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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세 노랑머리 女로커…아이 셋 낳고도 "넷째도 입양 고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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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세 아이의 엄마이자, 록밴드 더더(THE THE)의 보컬인 이현영을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윤당아트홀에서 만났다. 김종호 기자

세 아이의 엄마이자, 록밴드 더더(THE THE)의 보컬인 이현영을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윤당아트홀에서 만났다. 김종호 기자

록밴드 더더(THE THE)의 보컬 이현영(46)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세 번 놀란다. 결혼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두 번, 그 아이가 하나 둘도 아닌 셋이란 사실에 마지막으로 놀란다. 로커와 엄마의 삶을 동시에 산다는 건 어렵지 않을까. 이씨는 “오히려 아이들이 내 삶의 위안”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한 공연장에서 만난 이씨는 노랑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영락없는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이야기만 나오면, 평범한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는 “아이 낳고 살기 정말 힘든 세상이긴 하다”면서도 “그래도 삶이 힘들 때 가장 위안이 되는 존재 또한 아이들이더라. 넷째도 갖고 싶지만, 나이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어 입양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내게 다시’ ‘딜라이트(Delight)’ ‘잇츠 유(It’s You)’ 등의 노래로 90년대 말을 풍미한 더더는 1대 보컬 박혜경의 목소리가 대중에겐 더 친숙하다. 이씨는 2012년, 6대 보컬로 합류했다. 첫째 딸이 7살 무렵이었다. 당시 인터넷에 올라온 ‘더더는 박혜경 아니냐’ 등의 댓글에 이씨와 딸 모두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딸이 어엿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로커 엄마는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딸도 “우리 엄마 노래 잘한다”며 응원했다.

노랑머리 ‘로커’이자 세 아이 엄마…“원래는 다섯 낳고 싶었죠”

 밴드 더더(THE THE)의 주축인 김영준(왼쪽)과 보컬 이현영(가운데)은 2006년 결혼해 딸 이랑(17), 아들 사랑(14)·하랑(11)을 낳았다. 마침 인터뷰 장소인 윤당아트홀에서 보컬 연습을 하고 있던 이랑(오른쪽)씨까지, 세 가족이 포즈를 취했다. 김종호 기자

밴드 더더(THE THE)의 주축인 김영준(왼쪽)과 보컬 이현영(가운데)은 2006년 결혼해 딸 이랑(17), 아들 사랑(14)·하랑(11)을 낳았다. 마침 인터뷰 장소인 윤당아트홀에서 보컬 연습을 하고 있던 이랑(오른쪽)씨까지, 세 가족이 포즈를 취했다. 김종호 기자

합계출산율 0.7명의 초저출산 사회에서 이씨가 ‘다자녀’를 꿈꾸게 된 건 유년시절 영향이 컸다. 오남매 중 셋째였던 이씨는 “언니들과 지지고 볶고 싸워도 그 시끌벅적한 집안 분위기가 좋았다”고 떠올렸다. 남편 김영준(더더의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은 외동으로 외롭게 자라 본인이 꾸린 가족은 복닥복닥하길 바랐다. 두 사람은 결혼할 때 “아이는 5명 갖자. 밴드 하기도 딱 좋게”라고 마음을 모았다.

이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도 최대한 아이들을 직접 돌보려 했다. 연습실이며 공연장이며 가릴 것 없이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합주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자고 악기를 만지며 놀았다. 이씨는 “사람들은 ‘할머니가 다 키워주니 셋이나 낳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거의 맡긴 적이 없다. 만삭까지 축제 공연을 뛰었다”고 말했다.

록밴드 더더(THE THE) 보컬 이현영(오른쪽)과 남편 김영준(가운데), 이들의 첫째 딸 이랑(왼쪽)씨. 김종호 기자

록밴드 더더(THE THE) 보컬 이현영(오른쪽)과 남편 김영준(가운데), 이들의 첫째 딸 이랑(왼쪽)씨. 김종호 기자

이씨의 육아 철칙은 “아이들은 아이들처럼 대하자”는 것이다.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나가서 놀되, 하고 싶은 걸 빨리 정해보자”고 어릴 때부터 일러줬다. 세 아이 모두 각자의 적성을 찾았다. 장녀 이랑(17)은 예술고등학교에서 보컬을 전공하며 부모처럼 뮤지션을 꿈꾸고 있고, 아들 사랑(14)과 하랑(11)은 각각 그림과 연기를 배우고 싶어 한다. 이씨는 “혹시나 싶어 아이들에게 학원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억지로 가는 친구들이 불쌍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오히려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풀어주면 알아서 하고 싶은 분야를 찾거든요. 대신 기본적인 인성은 꼭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런 문제로 혼나야 할 땐 칼같이 얘기해요.”

양육 철학이 확고한 이씨 역시 아이 셋을 길러내는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여느 엄마처럼 아이들 삼시세끼 챙겨주다 하루가 끝이 나기 일쑤다.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은 일주일에 이틀 정도다. 코로나19 이후 공연계가 힘들어져 아이들에게 “용돈 조금만 줄이자” “오늘은 (반찬) 이렇게만 먹자” 처럼 하기 싫은 말을 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

그런 삶의 고비마다 이씨를 다시 일으킨 것 역시 아이들이었다. 이씨는 “요즘도 가끔 힘들어서 잠시 넋 놓고 있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이 어찌 알고 ‘밥 달라’는 말도 먼저 안 하더라”며 “아이들이 엄마를 먼저 생각해주는 거다. 그럴 때면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다시 힘을 내게 된다. 아이들에게 내가 주는 것보다 받는 위안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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