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최훈 칼럼

‘싸가지 없다’는 이준석의 신당, 왜 화제일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주필

최훈 주필

생각을 해주게 한 최근의 TV 예능 장면. BTS를 만든 방시혁(50세) 하이브 의장과 박진영(51세) JYP엔터테인먼트 창립자의 대화다. 박진영은 자신의 AD로 일하던 방시혁의 30대를 이렇게 기억했다. “같이 일하자 했더니 대뜸 ‘뭘 해주실 거예요’라고 무뚝뚝이더라. 참 철딱서니 없어 보였다. 주변 이들도 화장실 가서 ‘쟨 왜 그래’ 수군거리더라. ‘형. 사람마다 사물을 담는 시각이 모두 다른데 논리로 설득이 돼요’라며 한심한 반항만 해대고…. 그땐 자존심 때문에 ‘왜 안 돼’ 우겼는데 십 수년 지나 보니 진짜 논리로만 설득은 안 되더라.”

방 의장도 “그땐 내가 세 치 혀로 천냥 빚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했었다”며 웃었다. “그 시니컬함에다 투덜투덜, 찡얼찡얼하면서도 자기 할 일은 다 해놓더라”는 게 JYP의 무마(?)였다. ‘싸가지 없던’ 방시혁을 조리돌림해 아웃사이더로 밀어냈다면 그와 BTS는 지금 어찌 됐을까….

“기존 정당 확 바뀌어야” 열망 담겨
신당에의 시중 관심과 기대 적잖아
거대정당 기득권 집착, 누리려다간
‘새 정치’ 희구하는 총선 심판 직면

곳곳 ‘이준석 신당’이 화제다. 38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얼추 그 당시 방시혁 나이다. “안철수씨 조용하세요”와 “미스터 린튼” 영어 면박으로 싸가지 논박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런데 묘한 반전이 생긴다. 나이 좀 있는 분들조차 이런 얘기다. “아니 하버드대 학부에서 컴퓨터·경제학 배운 이준석이 싸가지가 있었으면 지금쯤 금융·IT의 고액 월급쟁이 하지, 뭔 이런 험한 꼴 겪겠느냐.” 반박이 어렵다. 선거 때면 반짝하다 아니다 싶으면 생계로 도망친 게 우리 ‘젊은 피’다. 금배지 한번 못 달았지만 12년 동안 이 꼴사나운 정치의 가시밭길을 꾸준히 걸어온 그의 궤적만은 평가하는 분위기다. “선진국의 글로벌 스탠더드 겪어 본 ‘별종’이 메기처럼 정치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들도 스며 있겠다.

지금 말뿐인 이준석 신당(유승민이 결합한)의 지지도는 21.1%로 국회 6석의 정의당(1.8%)을 압도하고 있다.(10월 30~31일, 피플네트웍스리서치) 결국 신당을 만들지, 몇 석이나 얻을지, 여야 어디에 타격일지 설왕설래다. “거대 정당의 과반 표결을 가를 캐스팅보트 의석 만큼이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화·협치의 촉매로서의 기대다. 그러나 더욱, 가장 중요한 본질은 새 정치 세력에 사람들의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인요한 혁신위, 용산의 총선 차출, 이재명 사당의 친명 공천보다 훨씬 더 말이다.

바로 두 기득권 정당에 대한 혐오와 환멸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진정 누가 더 싸가지가 없느냐”의 문제다. 두 재벌 정당의 ‘업보(業報)’를 한번 따져 보자. 우리 정치는 한마디로 ‘586 운동권’과 ‘검사 등 법조인’들의 결투다. 민주당 초선 81명 중 운동권이 27%(22명), 그중 10명이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국민의힘 초선의 주축은 법조인·관료 42명이다. 여야 합쳐 검사·변호사 등 법조인은 44명으로 15.8%(초선의 17.7%). 전체 인구 중 몇 %가 운동권·율사 출신이길래 이리 과잉대표돼 있을까. 일상이 된 막말 맞짱의 주인공들 보라. 십중팔구 운동권 대 검사 등 법조인이다. 투쟁이건 소송이건 전부 아니면 전무이니 대화·양보·타협의 경험과 기술이 약한 탓이다.

미국 연방 의회는 공공서비스나, 주 정부 선출직 경험의 검증된 신인이 67.4%다. 상·하원 535명 중 320명(59.8%)이 비즈니스 출신이다.(매일경제신문) 세상과 부대끼며 돈 버느라 고생 좀 해봤으니 그 현장과 입법·정책의 연결이 가능하다.

우리의 ‘세대 단절’은 더욱 심각하다. 선량들 중 20대·30대·40대가 0.7%(2명), 3.7%(11명), 12.7%(38명)뿐이다. 유권자의 비율인 20대 15.5%, 30대 15.9%, 40대 19%와 비교하면 거대 정당의 “청년 배려”란 보이스피싱 수준. 젊음이 현장에서 민주주의 체득하고, 대화·타협·조정의 능력을 키워주는 게 정치 선진국이다. 그들의 등원·출마 등 첫 정치 입문 나이? 클린턴(28), 오바마(31), 데이비드 캐머런(35), 메르켈(36), 마크롱(30), 리시 수낵(35) 등등. 60대에 본업 떠나 대통령이 되는 사건이란 그들에겐 기적 같은 일이겠다. ‘돌연변이’ 트럼프를 뺀다면….

진보와 보수의 오랜 쟁점이 세대교체이기도 하다. “전 세대에게 물려받은 정치 제도나 관행을 준수하라 한다면 신이 준 인간의 자유를 향유할 수 없다”(토머스 페인)는 게 진보다. 30년 이상 ‘한물간 법’은 모두 폐기하자고도 주창한다. 반면 보수는 “모든 세대는 앞 세대로부터 제공받은 지혜와 업적을 보존하고, 그 혜택을 후대에 전해주는 걸 목표로 필요한 부분을 개혁해야 한다”(에드먼드 버크)고 맞선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사실이 있다. “모든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누리기만 해선 안 된다, 늘 자신을 개혁하라”는 계율이다.

꼭 ‘이준석의 신당’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정치’란 시대정신의 용암이 분출할 심판의 임계점에 한국 정치가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득권 거대 정당의 쇄신과, 신당의 시원한 도전. 모두를 지켜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