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2024년 미국 대선
2024년 미국 대선이 1년 안쪽으로 다가왔다. 마침 오늘(11월 20일)이 생일인 81세의 현직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미국 역사상 최고령의 연임 대통령이 된다. 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재 공화당 내 추세대로 후보로 선출된 뒤 본선에서 승리한다면 제45대에 이은 제47대 미국 대통령이 된다. 미국 역사상 임기를 나눠 대통령에 당선된 유일한 사례는 1888년 재선에 실패한 뒤 1892년 재집권에 성공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제22대 및 24대)이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 전쟁 실패와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에 벌어진 정치 양극화와 의회 권력 약화를 동시에 겪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국내외 정책이 과거와 판이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가령 미국의 글로벌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놓고서 바이든은 과학기술과 입법 정치를 강조하는 반면 트럼프는 무역 관세와 행정명령을 중시한다.
당내 경쟁자 없는 트럼프 독주
91개 혐의 사법 리스크는 변수
바이든, 현직 프리미엄 있지만
나이·물가·전쟁 등에선 약점
상대방 혐오가 두 후보의 동력
내년 본선은 상황 급변할 수도
바이든 현직 프리미엄 통할까
미국 대선 기간 중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이 종종 정책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무시할 수 없는 현직의 유리함이다. 예컨대 오바마는 재선에 도전한 2012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불법 이민 청년들을 구제했고, 트럼프도 재선에 도전한 2020년 농업 주(州) 지지자들을 달래기 위해 중국과 전격적으로 무역 합의를 했다.
최근 바이든의 중국 화해 드라이브에서도 공화당 쪽으로 이탈할 조짐을 보이는 경합 주 거주 아시아계 유권자들을 지키려는 목적이 엿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지나친 중국 때리기가 미국에서 아시아계 혐오 범죄를 초래했다고 믿는 이들에게 바이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포옹하는 장면을 보여 주고 싶어했다.
트럼프, 헤일리와 양자구도 주목
공화당의 경선 투표는 내년 1월 15일 시작된다. 현재로선 트럼프가 후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트럼프가 현재 강세를 보이는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 압도적 1등을 하지 못하고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와 양자 대결 구도가 만들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를 위협하는 변수는 사법 리스크다. 모두 91개의 혐의로 4차례의 형사 기소를 당했다. 그중에서도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는 조지아 케이스가 가장 심각하다. 바이든이 압승했던 카운티에서 진행되는 재판이어서 배심원 구성부터 트럼프에 크게 불리하다. 게다가 조지아 케이스는 재판 과정이 유일하게 TV로 중계된다. 트럼프와 함께 기소된 최측근 중 일부가 이미 죄를 인정하고 형량 협상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내년에 만약 기소된 4 건 중 한 건에서라도 배심원 12명 전원의 만장일치에 의해 유죄 판결이 나오고, 판사가 트럼프의 투옥을 선고하면 미국 대선은 크게 요동칠 것이다. 그 파급력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경합 주의 무당파 유권자들이 트럼프에 등을 돌리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현실적으로는 트럼프에 반신반의하던 공화당의 온건파 유권자들마저 트럼프 편을 들게 될 수도 있다.
“트럼프 경제정책 더 신뢰” 조사도
왜 다시 트럼프일까. 트럼프는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국제주의 회귀로 불거진 백인 고졸 유권자들의 위기감과 소외감을 기폭제 삼아 공화당을 자기 정당으로 바꿔버리며 당내 적수를 없애 버렸다. 그러나 트럼프 인기는 이보다는 바이든에 대한 실망감이 더 결정적이다.
단순히 고령의 문제가 아니다. 비(非)동맹국 우크라이나를 위한 무작정 퍼주기에 대한 불만, 지표와는 달리 전혀 체감되지 않는 높은 물가에 대한 불만, 가장 중요한 정치·경제 변수인 자동차 기름값 상승에 대한 불만 등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타임스(NYT) 여론 조사에 따르면 위스콘신을 제외한 5개 경합 주에서 바이든보다 트럼프의 경제 운용을 신뢰한다는 유권자들이 평균 25%포인트 이상 많았다.
또한 오바마와 트럼프처럼 화끈한 입담 대통령을 이미 체험한 미국 유권자들의 눈과 귀에 바이든은 소통 부재와 무기력의 상징이 됐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역시 바이든에게 악재다. ‘냉전 리버럴’인 바이든의 이스라엘 감싸기로 인해 실망한 경합주 미시간의 아랍계 유권자들이 제3당 후보 지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백악관이 뒤늦게 이스라엘의 가자(Gaza) 지구 재점령을 반대하고 나선 이유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든에 대한 실망이 트럼프를 회생시켰다면, 트럼프에 대한 혐오가 바이든을 재선시킬 수도 있다는 미국 현실이다. 실제로 정치 양극화 시대의 투표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찬성이 아닌 상대방 후보에 대한 반대를 더 큰 변수로 고려하게 마련이다. 공화당 경선을 압도하고 있는 트럼프 이미지와 국내외 상황에서 쩔쩔매는 바이든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는 현재 국면이 내년 본선에 가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조기투표로 민주당 결집 가능성
2020년 ‘팬데믹 대선’부터 활성화한 조기 투표가 민주당 후보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다. 예전의 미국 대선은 투표일 하루에 치러져 민주당 성향의 저소득층이나 청년층이 투표를 건너뛴 적이 많았다. 이제는 거의 3주가량 투표가 진행된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바이든과 민주당이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을 거둔 것도 사전 투표를 통한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 덕택이라는 분석이 많다. 낙태 자유와 기후 위기라는 민주당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를 부각하고, 민주주의를 내팽개친 트럼프의 재집권 부당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선거 전략이 통한다면 바이든 재선도 가능하다.
트럼프가 돌아온다면 미국과 세계는 불확실성에 빠질 것이다. 다만 트럼프의 관심사와 전략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관세 맨(Tariff man)’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트럼프는 무역과 관세에 집착한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고, 한국 같은 대미 수출국들에 대한 관세 장벽이 높아질 수도 있다.
반면 트럼프는 바이든과 달리 반도체나 배터리·전기차 등에 큰 관심이 없다. 미래 산업과 과학기술에 중점을 두는 한국 기업들에 바이든 시대의 규제나 간섭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트럼프로 인해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쨌든 종결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미국의 전통적인 지정학적 대외전략을 무시하는 트럼프가 대만 문제에는 일부러 애매한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집권 대비 ‘지연 전략’ 필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2025년에 만료된다.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임기 시작 직후 협상이 시작된다. 이 경우 트럼프가 무리한 분담금 증액이나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그런데 트럼프 한 명을 제외하면 미국의 누구도 주한미군 축소 또는 철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국 정부는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다각도로 트럼프를 우회하고 압박할 전략 및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4년 후에는 사라질 트럼프를 다루는 포괄적인 ‘지연 전략(delay game)’을 지금부터 정교하게 짜야 한다.
바이든이 재집권하는 경우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중국과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할지 여부다. 아시아계를 포함한 진보 성향 유권자들에게는 기후 위기와 함께 미·중 공존이 민주당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주된 정치적 관심사다. 재선에 성공한 역대 민주당 대통령들 역시 적대 국가와의 외교 돌파구에 골몰했다. 클린턴 2기 행정부가 북한에,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가 이란에 공을 들였던 것을 떠올려 보면 된다. 다만 바이든의 경우, 의회와 여론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과의 협력을 제도화할 정치적 역량과 에너지를 가졌는지가 불확실하다.
바이든 재선되면 조기 후계 경쟁
바이든의 재선 후에는 곧바로 민주당 내부에서 후계 경쟁이 불붙을 전망이다. 심지어 2026년 중간선거까지 치르고 나면 바이든은 거의 잊힌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대신 한·미·일 삼각 협력은 더 진전된 제도화 방향으로 자리 잡을 공산이 커진다. 바이든 행정부뿐 아니라 워싱턴의 외교 정책집단 모두 한·미·일 공조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시아를 잘 모르는 미국 외교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려면 그 계기와 동력을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서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 관건이다.
결론적으로 바이든이 되든, 트럼프가 되든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다. 한·미 동맹을 최우선에 두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되 미국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달라진 미국을 상대로 새로운 현실 전략을 짜는 일은 한국 외교와 정치가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숙제다.
서정건 경희대·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