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연금 대수술 미루는 건 망국적 포퓰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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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맹탕’ 국민연금 개혁안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 리셋코리아 연금분과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 리셋코리아 연금분과장

국민연금 개혁이 산으로 가고 있다. 지난 9월 1일 공청회에서 18개나 되는 개편안을 제안한 데 이어 지난달 27일에는 ‘맹탕’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내놨다.

연금 개혁의 롤모델로는 핀란드를 꼽고 싶다. 핀란드는 기초연금을 효과적으로 개편하였고, 모든 공적연금에 똑같은 액수의 연금을 지급하도록 개혁했다. 또 지속적 연금 제도를 위해 기대여명계수(Life-expectancy coefficient)를 활용한다. 생애 연금 지급 총액은 동일하나, 받는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매월 연금 지급액에서 차감하여 지급하는 것이 기대여명계수 작동 방식이다.

국민연금 미적립부채 2090년엔 GDP의 3배 추정
공무원연금·사학연금은 국민연금보다 더욱 심각
개혁 없인 적자 심각해져 미래 연금 지급 불투명
연금 보험료 올리고 65세까지 일할 권리 보장해야

1991년 심각한 경기 위기에 빠졌던 핀란드는 당시 노인 93%에게 지급하던 기초연금을 10년 뒤인 2000년대 초에 45% 이하로 떨어뜨렸다. 기초연금 전액을 받는 노인은 전체 노인의 8%에도 못 미친다. 대다수 기초연금 수급자는 소득비례연금액에 따라 기초연금액 일부만을 받는다. 취약 노인에게는 국가가 보증연금을 지급한다. 적절한 노후 생활이 어려운 중간 이하 저소득 노인에게는 주택수당이 추가로 지급된다.

덜 내고도 더 받는 공무원·사학연금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을 발표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 보험료를 얼마나 더 내고 얼마를 받게 되는지 수치를 제시하지 않아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을 발표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 보험료를 얼마나 더 내고 얼마를 받게 되는지 수치를 제시하지 않아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연합뉴스]

핀란드에서는 소득비례연금이 중추 제도이며, 보험료가 24.4%(정부 지원 포함하면 28% 이상)다. 퇴직(연)금이 없는 대신 고용주가 보험료의 3분의 2를 부담한다. 연금지급률(소득대체율 나누기 가입기간)은 1.5%(40년 기준 소득대체율 60%)이다. 기대여명계수를 작동시키면 1.1%(소득대체율 44%)로 떨어진다. 핀란드 사람들은 더 오래 일하면서 가입 기간을 늘려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퇴직수당(민간 퇴직금 대비 최대 39% 수준)도 없이 일반 국민과 동일하게 연금지급률 1.5%(40년 기준 소득대체율 60%)만을 지급하는 핀란드 공무원연금 보험료는 28%가 넘는다. 반면 한국 공무원·사학연금은 18%의 낮은 보험료를 내면서도 연금지급률은 1.76%(40년 기준 소득대체율 70.4%)에 달한다.

스웨덴은 1999년 확정기여(DC)형으로 지급 방식을 전환했다. 이는 보험료 납부자 자신의 계정으로 보험료가 귀속되며, 낸 만큼 연금을 받는 방식이다. 일생 납부한 보험료에 이자(스웨덴 실질 경제성장률)를 더한 금액을 매월 연금으로 지급한다. 제도 작동 원리상 자동으로 연금 재정이 안정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연금 받는 나이를 조정해 재정 불안정 요인을 덜어낸다. 스웨덴이 올해부터 연금수급연령을 67세로 올린 이유다. 독일·일본은 2004년 스웨덴 방식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일본은 2123년까지 지급할 돈을 확보, ‘100년 튼튼연금’을 달성했다.

이들보다 인구구조가 나쁘고 연금 수지 불균형이 심각해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한 게 한국이다. 그런데도 스웨덴·독일식 연금제도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반대한다. 재정추계 기간을 70년으로 정해놓고도 기금 소진 이후는 알려주지도 않는다. 기금 소진 이후의 누적 적자 공개 요구를 ‘공포 마케팅’이라고 비판한다. ‘2019년 재정검증결과’에 따르면 일본 후생연금은 2115년 22.9조 엔(약 200조원, 2019년 현재가치)의 적립금이 있다. 100년 후 상황을 공개하니 알 수 있는 수치다.

국민연금 누적 적자 비율 공개 무산

전영준 한양대 교수는 지난 7일 연금연구회 세미나에서 국민연금 미적립부채가 2023년 1825조원(GDP의 80.1%), 2090년 4경4385조원(2090년 GDP의 299.3%)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소득대체율을 50%(현행 40%)로 올리면 2090년 미적립부채는 2경4000조원이 늘어난 6경8324조원(2090년 GDP의 460.7%)으로 추정된다. 전 교수는 70년 후인 2093년까지 국민연금의 누적 적자가 1경4000조원(4.5% 할인율 적용)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달 13일 22차 재정계산위원회 회의에서 2093년까지 GDP 대비 국민연금 누적 적자 비율을 추가하기로 합의했다. 보험료를 12%로 3%포인트 올리면서 소득대체율을 50%로 10%포인트를 올리면 2093년 GDP 대비 누적적자 비율이 95%(기금투자 수익률로 할인)에 달한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위원회가 당초 합의했던 국채 이자율로 할인하면 180% 수준으로 급증한다. 이처럼 할인율에 민감하니 일본처럼 수치를 공개하라는 거다. 문제는 이 정보가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에서 빠져있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항목이 빠지다 보니 망국적 포퓰리즘이 활개 치게 된다.

연금 소득대체율, 부담 대비 너무 후해

올해 90세인 김일천 전 보건복지부 국장이 우리의 연금 논의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며 토로했다. 그는 “독일 근로자 평균 연봉이 세전 4만7700유로(약 6700만원)인데 옛 서독 지역 남성의 월평균 연금액이 1212유로(약 171만원, 2021년 기준)이니, 40년 정도 가입하고도 소득대체율이 30.49%에 불과하다”며 한국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지나치게 후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일본 정부가 공개한 2021년 기준 일본 공무원연금 평균액이 17만3000엔(월 150만원), 후생연금 평균액은 14만9000엔(월 129만원)이다. 기초연금까지 포함된 액수다. 18.3%를 부담하면서 받는 금액이 이 정도다. 그러니 100년 뒤에도 줄 돈이 있는 거다. 최근 독일 정부가 유럽연합(EU)에 제출한 2050년의 예상 연금 소득대체율은 37%다. 스웨덴은 33%다.

외국 사례들을 보면 문제의 핵심은 소득대체율이 아닌 노동시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스웨덴의 실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은 이미 40년을 넘어섰다. 우리는 50년 뒤에도 27년을 넘지 못할 거라고 하면서 소득대체율을 더 올리자고 한다. 최신 동향을 모르니 그런 말을 하는 거다.

우리처럼 퇴직연령과 연금 수급연령의 공백이 긴 나라가 없다. 정부가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정부도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거 같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초고령 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를 운영하는 이유다. 정년 연장은 청년층의 취업 빙하기가 완화된 후에 본격화해야 연착륙할 수 있다. 대신 ‘퇴직 후 재고용’ 형태로 정년 직전 70% 수준의 월급을 받으면서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할 때다. 2033년쯤에 정년이 65세로 연장된다면 그 시점에서 또 70세까지 ‘퇴직 후 재고용’ 형태로 5년을 더 일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10년 더 늘릴 수 있다. 짧은 가입 기간 문제는 이렇게 풀면 된다.

국민연금 보험료, 소득 12% 이상 돼야

OECD 회원국 중 국민연금에 소득재분배 기능을 넣어 운영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 국민연금을 100% 소득비례연금으로 전환하고, 연금 적용 소득을 공무원연금 인정 소득인 월 860만원으로 올리면 OECD가 발표한 31%가 아닌 42.5%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대폭 올라간다. 중간 이상의 고소득층 국민연금액은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소득대체율이 하락할 중간 이하 저소득층은 독일·프랑스처럼 성실한 가입자에게 더 높은 소득대체율(일례로 50%)을 적용하면 된다. 소요 재원은 국민연금이 아닌, 기초연금 선정 기준 변경을 통해 절약된 세금을 활용하면 된다. 기초연금 수급자로 남게 될 취약 집단은 국가가 설정한, 지금보다는 더 높은 최저연금액을 지급하면 모든 소득계층이 연금을 더 받으면서도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연금개혁 방향이다. 이를 위해 제도의 수지 불균형부터 해소해야 한다. 보험료를 12% 이상으로 빨리 올려야 하는 이유다. 보험료 인상에 따른 저소득층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보험료 지원 조치도 병행돼야 한다. 보험료 인상과 노동시장 개혁을 전제로 핀란드식 준자동안정장치인 기대여명계수는 2033년 이후부터 작동시킬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스웨덴식 확정기여형 제도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보험료 인상에 대한 청년층의 동의 확보를 위해서다. 자신이 낸 보험료가 자신에게 귀속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청년층이 보험료 인상에 동의할 것이다. OECD에서 권고한 공무원연금·사학연금의 국민연금과의 통합 운영 방안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국민연금보다 재정 불안정이 훨씬 심각한 공무원연금·사학연금을 그대로 두고서는 국민연금을 개혁하자고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 리셋코리아 연금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