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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굳이 왜 말했을까…"시진핑 독재자" 이 말의 숨은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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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필규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전 세계가 주목했던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샌프란시스코 회담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끝났다.

백악관은 지난 몇 달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비롯한 주요 장관들을 잇달아 중국에 보내면서 시 주석 방미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회담장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린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아닌, 40㎞ 떨어진 100년 역사의 고택 '파일롤리 에스테이트'를 통째로 빌려 예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예우했지만, 정작 지난 15일(현지시간) 정상회담 후 첨단기술 수출 규제 등 대중국 정책에 있어 변화는 없었다는 평가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예우했지만, 정작 지난 15일(현지시간) 정상회담 후 첨단기술 수출 규제 등 대중국 정책에 있어 변화는 없었다는 평가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정작 마치고 보니 시 주석의 손에 쥐여준 것은 별로 없었다는 평가다. 중국이 변화를 바랐던 첨단기술 분야 수출 통제에 대해선 오히려 더 강한 메시지를 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직후 돌아서자마자 시 주석을 "독재자"라고 불렀다.

어렵게 성사된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중 관계의 돌파구가 나올 거라 기대했던 이들에겐 선뜻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이다. 하지만 워싱턴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이런 바이든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집권 전부터 세워둔 전략에 따른 일관된 과정이란 분석이다.

지난 대선 전인 2019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커트 캠벨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현재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정책 가이드라인이 된 '재앙 없는 경쟁'을 공동 집필해 발표했다. 포린어페어스

지난 대선 전인 2019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커트 캠벨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현재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정책 가이드라인이 된 '재앙 없는 경쟁'을 공동 집필해 발표했다. 포린어페어스

지난 2019년 가을,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는 '재앙 없는 경쟁(Competition Without Catastrophe)'이라는 글이 실렸다. 현재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이끄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과 커트 캠벨 인도태평양조정관의 공동 기고문이다.

4년 전 쓴 글이지만 그간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을 포함,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온 표현이나 논리가 이 기고문에 그대로 들어있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정책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경쟁하면서도 협력은 가능하다. 다만 위험한 갈등의 증폭을 막는 게 그 성공 조건"이라는 것이 기고문의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해석과 함께 앞으로 바이든 정부의 대응 방향도 가늠해볼 수 있다.

"(미·중 간에는) 군사도발이든 오해든 큰불로 번질 수 있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양국 군사 관계가 정치적 갈등에 발목 잡혀선 안 된다. 군 고위급이 더 자주, 더 깊이 있게 만나야 한다."('재앙 없는 경쟁' 중)

이번 회담 후 바이든 대통령은 "누구든 양국이나 역내에 어떤 우려라도 있을 때 수화기를 들어 전화하면 받기로 했다"며 "이것은 큰 진전"이라고 자랑했다. 전날 기자회견에서도 이 부분이 회담의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라고 했다.

기고문에서도 미·중 군사 소통라인의 중요성을 비중 있게 강조했다. 캠벨과 설리번은 앞으로 가장 위태로울 수 있는 지역으로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그리고 한반도를 꼽았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중국의 군사력을 고려할 때,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대신 미·중간 더 많은 군사 소통 채널을 통해 억지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냉전 시대 소련과도 군사 핫라인을 설치하고 행동강령을 공유했다. 미·중 사이에도 이런 '지속 가능한 억지'가 가능하다고 봤다.

지난 2019년 '재앙 없는 경쟁'을 공동 집필해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과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왼쪽 둘째)가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함께 서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019년 '재앙 없는 경쟁'을 공동 집필해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과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왼쪽 둘째)가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함께 서있다. EPA=연합뉴스

"중국은 무임승차를 멈추고 무역 규정을 지켜야 한다. 워싱턴은 여전히 무역이나 투자 면에서 베이징이 미국에 해온 것과 똑같은 호혜적 조처를 중국에 하게 될 것이다."('재앙 없는 경쟁' 중)

회담 전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미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넘었고 상당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교역 파트너가 된 중국과 공존해야 한다는 기고문 내용에 따른 판단이다.

그렇지만 캠벨과 설리번은 "중국의 불공정한 정책, 지식재산권 절도,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등이 참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도 지적했다. 따라서 미국도 중국 방식으로 맞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중국에 한 문제 제기와 거의 같은 맥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미군에 맞서는 데 사용될 기술을 중국에 제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첨단기술 분야에선 중국이 했던 것처럼 수출 통제를 계속 이어가겠단 뜻으로 해석된다.

한편 기고문에선 미국이 협력을 구하기 위해 먼저 양보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힘이 세진 중국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합의를 어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중국과는 경쟁 관계를 계속 가져가는 게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의 협력에 도움이 될 거라고도 봤다.

"독재 자본주의와 디지털 감시가 융합된 중국식 체제는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매력적일 수 있다. 독재자에 대한 지지는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도전이 된다."('재앙 없는 경쟁' 중)

정상회담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 말미에 바이든 대통령은 "여전히 시진핑을 독재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공산주의 국가를 운영한다는 면에서 시진핑은 독재자"라고 답했고, 중국 외교부는 "무책임한 정치 농간"이라며 발끈했다.

피해도 되는 질문에 굳이 답을 한 것은, 그만큼 '대중 정책'과 '독재'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국제 질서는 강대국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따라서 기고문에선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보며 세계가 독재에 더 끌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중 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커트 캠벨 백악관 인태조정관(왼쪽)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가운데)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AP=연합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중 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커트 캠벨 백악관 인태조정관(왼쪽)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가운데)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AP=연합뉴

다만 캠벨과 설리번은 독재자를 견제한다고 해서, 중국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나 붕괴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를 기대하는 게 미국이 지난 40년 동안 해온 실수라고도 했다. 따라서 '반중국'이 아닌, '친민주주의' 연합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맞서야 한다고 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 입에서 "독재자" 발언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기고문을 쓴 캠벨 조정관은 이달 초 국무부 부장관으로 지명됐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캠벨이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면 국무부 차원에서도 이런 중국과의 경쟁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