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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로마의 목욕탕 문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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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며칠 전 생일 기념으로 토론토 근처의 유럽 스타일의 대규모 스파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한국에서 온천과 대중목욕탕에 다니며 자란 덕분에 서양의 ‘스파 문화’에 별다른 호기심 없었는데, 이번에는 무척 신선하고 인상 깊게 다가왔다. 보통 스파라고 하면 피부관리나 마시지 좀 받고 온수탕에서 한동안 몸을 푸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6만㎡ 규모의 이곳은 10개 이상의 가지각색 사우나와 찜질방, 여러 온도의 수영장 및 휴식공간과 모닥불, 고급 레스토랑과 술집을 갖춘 한마디로 어른을 위한 놀이동산이었다. 플로팅 풀에 누워 물속으로 들리는 음악과 함께 무중력 명상을 체험하기도 했다.

아메리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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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문화의 전통은 다양하지만 이런 대규모 형태의 스파 시설은 로마시대의 산물이다. 로마 원로들이 뿌연 찜질방에 앉아 비밀 거래를 논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의 목욕 문화는 고도로 발달한 공학기술과 시멘트의 발명으로 생겨난 혁명적인 건축기술 덕분에 만들어졌다.

로마 제국의 상수도 시스템은 물을 멀리서 끌어오는 200여 개의 ‘아퀴덕트(Aqueduct)’로 이루어져 있다. 로마의 절정기에는 이 아퀴덕트를 통해 1200여개의 분수대, 11개의 대규모 공중목욕시설, 수백 개의 작은 목욕탕, 그리고 모의 해전을 벌였던 두 개의 인공호수에 물을 공급했다.

티투스 이후의 로마 황제들은 너도나도 으리으리한 공중목욕탕을 건설해 인심을 사고 권력을 과시했다. 216년 건설된 카라칼라의 욕장은 한 면이 330m가 넘는 거대한 시설이다.(사진) 돔과 아치를 이용한 건축 양식은 20세기 주요 지형지물에 반영되기도 했다. 한 번에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욕장은 단순한 목욕 공간이 아닌, 사교·운동·휴식·사업, 그리고 쾌락의 공간이었다. 스파 문화를 전 세계로 퍼뜨린 로마제국의 영향력이 다시금 감탄스럽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