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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유연 근무환경이 왜 중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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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한국에 있을 때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런데 미국은 직장인 둘 중 한 명꼴로 정리해고된 적이 있다는 통계처럼 정규직도 고용 안정성이 낮다.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근무(알바)를 본인이 원해서 선택하는 사람이 많고, 또 이런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기업들은 매력적인 근무 환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내가 직접 경험한 미국 수퍼 체인인 트레이더 조와 스타벅스는 유연한 근무시간제 덕분에 알바생들 사이에서 속칭 ‘꿀알바’로 알려졌다.

트레이더 조 알바를 시작하고 가장 놀라웠던 점은, 매장에서 동시에 일하는 사람은 25명 남짓인데도 그 다섯 배가 넘는 140여 명의 시간제 직원이 고용돼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의아했었는데, 곧 궁금증이 풀렸다. 시간제 근무 직원은 본인이 일하고 싶은 요일, 시간대, 총 근무량을 제출하고, 그러면 거기에 맞는 근무 스케줄이 확정되어 나온다.

트레이더조·스타벅스 ‘꿀알바’
시간제 노동자 예상밖 활성화
근무시간·요일 등 손쉽게 조정
고용주 입장에서도 결국 유리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어떤 사람은 주 40시간을 일하고, 치위생사인 동료는 주 20시간, 또 현재 대학 공부를 하는 한 알바생 동료는 일요일에만 나온다. 낮에는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는 한 동료는 스플릿이라고 해서 아침에 세 시간 근무하고 돌아갔다가 밤에 다시 나와 세 시간을 일한다. 이렇게 모든 직원이 각기 다른 근무 시간대와 근무량을 갖고 있어 결국 총고용 알바생 수가 그렇게 많았던 것이다.

나는 처음에 주 15시간을 신청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출근했다. 섹션 리드로 승진한 후엔 제품 주문과 디스플레이를 책임지면서 주 4~5일 일하고 있다. 물론 내가 선호하는 시간에 나가고, 내가 선호하는 요일에 쉰다. 휴가도 3주 전에만 신청하면 최장 30일까지 갈 수 있다. 알바생이 많기 때문에 내가 휴가를 길게 간다고 동료들의 일이 많아지는 게 아니다. 높은 시급 이외에 이런 근무 시간 유연성은 좋은 직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선순환의 시작점이 된다.

두 번째 놀라웠던 점은 시간제 동료들끼리 근무 시간을 서로 쉽게 맞바꿀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갑자기 주말에 일이 생겨 출근을 못 할 것 같으면 해당 직원은 내부 시스템에 ‘시프트 오픈’ 공지를 올려놓는다. 그러면 그 시간에 근무가 가능한 직원이 ‘시프트 픽업하기’를 클릭하면 바로 시프트가 옮겨진다. 학기말 시험 준비를 하거나 아이 돌보기 등으로 갑작스럽게 일을 못 하게 된 직원은 본인 일하는 시간을 쉽게 조정할 수 있어서 좋고, 또 그 시프트를 픽업한 직원은 추가로 일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제도이다. 회사나 매장 입장에서도 필요한 인력에 펑크가 안 나니 삼자 모두에 좋은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노동시간 유연성은 스타벅스도 마찬가지이다. 스타벅스의 경우는 좀 더 유연해서, 내가 소속된 매장뿐만 아니라 옆 동네 매장에서 사람이 필요하면 그쪽으로도 순환 근무가 가능하다. 스타벅스는 어느 매장을 가더라도 음료·음식 메뉴는 물론 커피 머신을 비롯해서 숟가락·빗자루·쓰레받기·행주 하나까지 동일하다. 다른 매장에서도 내 매장에 있는 것처럼 바로 익숙하게 일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유연 근무가 가능한 시스템 표준화의 힘이다.

세 번째로 놀라웠던 점은 근무량과 연계된 의료보험제도다. 알바생도 직장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지난 6개월간 총 몇 시간을 근무했는가에 따라 직장 의료보험 자격이 주어진다. 예를 들면 상반기 동안 총 700시간 일하면 (주평균 약 26시간) 모든 의료보험 자격이 주어지고, 300시간 일을 한 경우엔 안과·치과 보험 자격만  주어진다. 기준 기간에 일한 총 근무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평가기간을 한두 달 남기고 혹시라도 시간수를 못 채울듯한 사람이 있으면 근무시간을 늘리라고 고지해 의료보험 자격을 유지하도록 한다.

물론 노동 문화와 노동 정책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의 트레이더 조나 스타벅스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한 명이 빠지면 당장 남아 있는 직원에게 일이 전가되어 할 일이 많아지는 근무환경이 대부분인 한국 리테일 산업에서 이런 유연한 근무환경을 꼭 고려해 보았으면 한다. 언뜻 보면 고용주 입장에서 필요인력보다 더 많은 알바생을 고용·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클 것 같지만, 필요한 때 필요한 직원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비즈니스 기회를 100% 살릴 수 있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미국에 추수감사절 휴일과 크리스마스 휴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내부 시스템에는 시프트 교환이 시작되고 있다. 완전가동이 필요한 회사와 직원들 모두가 윈윈하는 시스템이지 않은가.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