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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숨은 괴물 발굴하겠다”...'괴짜' 출판사의 새로운 실험

중앙일보

입력

출판사 사유악부의 시인선. 위성욱 기자

출판사 사유악부의 시인선. 위성욱 기자

경남 창원에 있는 출판사 ‘사유악부’가 잇따라 출간한 시집 시리즈(시인선)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시인은 신춘문예나 문학 계간지 등으로 화려하게 등단을 하진 않았지만, 새봄 같은 이미지가 있는 ‘신춘시인’이다.

사유악부는 창원에 있는 ‘뜻있는 도서출판’의 임프린트(하위 브랜드) 출판사로 주로 현대문학을 담당한다. 이곳 편집장은 기자·공무원·바이오벤처기업가·묘지관리인·부두노동자 등 특이한 이력이 있는 성윤석 시인이다.

그는 첫 시집인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동네』(문학과 지성사)를 시작으로『공중묘지』(민음사) ,『멍게』(문학과 지성사), 『밤의 화학식』(문예중앙), 『2170년 12월 23일』(문학과 지성사), 『그녀는 발표도 하지 않을 글을 계속 쓴다』(아침달) 등 시집 6권을 냈다. 그런 그가 “지역에 숨은 괴물을 발굴하겠다”며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사유악부가 내놓은 첫 시인선은 지난 9월 나온 김현미 시인의 ‘우리의 어디가 사랑이었나’다. 김 시인은 창원에 지내며 문단보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지산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 2019년 샘터에 작품을 발표하며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번에 사물과 풍경을 사랑으로 묘사한 61편으로 시집을 냈다.

시골시인 프로젝트 중 하나인 '시골시인Q' 시집 . 위성욱 기자

시골시인 프로젝트 중 하나인 '시골시인Q' 시집 . 위성욱 기자

총 4부에 걸쳐 전개되는 시적 흐름은 ‘사랑의 시작’과 ‘이어짐’ ‘상실’ 그리고 ‘그리움’이다. 2부 첫 시이자 표제시인 ‘우리의 어디가 사랑이었나’에서 “당신은 아주 오래 서쪽입니다”고 노래하던 시인은 이어지는 시 ‘환절기’에서 “이보다 더 좋은 날을 알지 못하네 당신 기다리기에”라며 사랑으로부터 건너와 이별에 도착한 먹먹함을 진솔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달 출간된 두 번째 시인선은 ‘을들의 노래’다. 경상대 법학과를 나온 뒤 한국소니전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시작해 현재 진보당 창원 의창구 위원장을 맡은 정혜경 시인이 낸 시집이다. 총 4부로 묶여 있는 이 시집은 정 시인이 학교비정규직노조로 일하며 겪은 애환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갑을’이 아닌 ‘동행’의 세상을 꿈꾸고 있다.

박관서 시인은 추천사에서 “시집에 담긴 58편의 시는 편편이 차별과 억압으로 얼룩진 현실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시적인 형식과 운율이 자연스럽다”며 “2023년 시점에서 써야 할 할 노동시가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 사유악부의 시인선. 위성욱 기자

출판사 사유악부의 시인선. 위성욱 기자

성윤석 시인과 그의 산문집. 시인 성윤석

성윤석 시인과 그의 산문집. 시인 성윤석

‘괴짜’ ‘아웃사이더’ ‘반골’로 불리기도 하는 성 시인은 ‘사유악부’ 시인선 외에도 최근 지역 문단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021년 경상도를 연고로 한 시인 6명의 시를 묶어 만든 『시골시인-K』(걷는사람)로 시작한 시골시인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그가 기획자로 참여한 이 시집은 지난해 제주의 〈시골시인-J〉, 그리고 올해 진주와 순천을 묶은 〈시골시인-Q〉로 이어지고 있다. 성 시인은 “사유악부 시인선도 그렇고, 시골시인 시도 그렇고 거기에는 밥하고 빨래하고 노동하고 사랑하고 온 진솔한 사람이 쓴 시가 있다”며 “그런 사람 냄새나는 그러면서도 문학성을 놓치지 않는 시나 시인을 계속 발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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