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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OT 분석해 선택과 집중, 전자·화학·기계 ‘항모’로 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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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호 14면

삼성 신경영 30년, 혁신의 길을 묻다 ④ 경영·사업구조를 바꿔라 〈끝〉

1993년 10월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된 현명관 사장은 11월 새벽 2시께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신경영의 마스터 플랜을 짜라는 지시였다. “세계를 향한 전략을 짜야 돼. 세계 1위를 하려면 업(業)의 개념을 잘 연구해야 돼. 반도체건 브라운관이건 전술은 있는데 전략이 없어. 전략을 세우고 업의 개념을 세워. 떼어낼 업종과 더 깊이 들어갈 업종이 뭐냐, 그 업에서 내 위치가 어디냐 이런 걸 완전히 분석해야 돼.” 이 회장의 말은 이어졌다. “이런 큰 전략을 만드는 회의를 일 년에 여섯 번쯤 해야 돼. 틀을 만들어놓으면 그 방향으로 쭉 가면 되거든. 5년 후, 10년 후 뭘 할지 매일 걱정해야 돼. 시뮬레이션은 하고 있나? 생각해본 적도 없는 거 아냐?”

‘올빼미’ 이건희 회장, 새벽에도 지시 전화

이건희 전 회장의 사업구조 혁신은 일등이 안 될 사업은 없애고, 일등이 될 만하거나 미래 먹거리는 집중 육성키로 한 데서 출발했다. 사진은 2004년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이 전 회장. [사진 삼성전자]

이건희 전 회장의 사업구조 혁신은 일등이 안 될 사업은 없애고, 일등이 될 만하거나 미래 먹거리는 집중 육성키로 한 데서 출발했다. 사진은 2004년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이 전 회장. [사진 삼성전자]

이 회장은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올빼미’ 스타일이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새벽 1~2시쯤 현 실장에게 전화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지시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랬다. 전화로 끝나는 날도 있었지만 한밤중에 자택으로 오라는 날도 많았다. “이건희 회장은 침실과 서재가 하나였다. 침대와 책상, TV와 오디오가 모두 한 공간에 있었다. 방도 크지 않았다. 이 회장이 팔을 뻗치면 닿을 곳에 책과 TV, 오디오 리모컨 등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신경영의 목표는 정해졌다. 세계 1등이고 초일류기업이다. 방향도 명확하다. 질 경영, 고객 만족 경영이다. 가격과 품질, 납기, 애프터 서비스 등 고객이 만족할 질 중시 경영을 해야 한다. 대리점과 협력업체, 임직원뿐 아니라 사회와 국민도 함께 만족할 고객 만족 경영도 해야 한다. 게다가 충격요법을 통해 CEO와 임직원들도 변화의 동기가 생겼다. 남은 건 어떻게 해야 신경영을 지속할 수 있을까다. 현 실장은 이 회장의 지시를 이렇게 정리했다. “결국 조직과 사람이었다. 신경영을 지속할 사업구조와 경영구조를 짜는 일이었다. 그래야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업구조 혁신의 원칙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1994년 ‘그룹 사업구조 조정계획’을 만들었다. 목표는 ‘사업기회의 선점’이었고 전략은 ‘사업구조 고도화’였다. 일등이 안 될 사업은 선제적으로 없애고, 일등이 될 만한 기존 사업과 일등이 될 수 있는 미래의 새 먹거리는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뭘 떼어내고 뭘 깊이 들어갈 것인가. 이 회장은 업의 개념을 잘 연구하라고 했다. 그 업에서 내 위치도 잘 파악하라고 했다. 각 사업에서 나의 강점과 약점,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라는 의미였다. 요즘 경영학 용어로 하면 SWOT분석이었다. SWOT는 강점, 약점, 기회, 위기를 뜻한다. 1990년대 초 이 회장은 엔고(高)에 주목했다. “엔고로 삼성의 무슨 사업에 좋은 기회가 생길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조선업이었다. 엔고가 되면 적자에서 흑자로 될 걸로 전망했다.

반면 계열 분리와 통폐합, 양도도 있었다. 제당과 합섬은 계열 분리,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브라운관과 영상, 석유화학, 건설 등은 통폐합하기로 했다. 난방기기, 제습기, 면직물, 자판기, 가스렌지 등은 철수하거나 중소기업에 넘기기로 했다. 삼성은 끌고 갈 사업을 배로 비유했다. 중핵사업인 전자·화학·기계는 항공모함으로, 무역과 금융업은 순양함과 보급선단으로, 건설과 유통·레저는 구축함으로 표현했다 (그림).

세계 일등으로 키울 신규사업도 발굴했다. 현 실장은 “이 회장이 가장 관심을 뒀던 게 ‘많은 것이 바뀔 21세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였다. 20~30년 후의 미래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얘기했는데, 전망이 대부분 맞았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초 ‘1인 1휴대전화 시대’를 예측했다. “21세기엔 개인이 전부 전화를 가진다. 세계 어디를 가도 전화가 다 된다.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도 바로 집으로 전화할 수 있다”고 했다. 삼성이 무선전화기를 반도체에 이어 제2의 먹거리 산업으로 정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육성한 배경이다. 96년 미국 모토로라를 제치고 국내 1위, 2000년 세계 3대 업체라는 목표도 달성했다.

이 회장은 또 ‘배터리 사업을 빨리 시작하라’ ‘소프트웨어 인력을 대거 확보하라’ 고 사장단을 닦달했다. 삼성이 2차전지 사업을 시작한 배경이다. 현 실장은 “솔직히 무슨 소린지 이해가 잘 안 갔다. ‘반도체 하나도 따라가기 힘든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 회장은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고 내놓으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 회장의 선견지명이 오늘의 삼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동차산업 진출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승용차 진출을 위해 삼성자동차를 설립한 건 1995년 3월. 하지만 반대가 극심했다. ‘이 회장의 개인 취미를 사업화했다’는 등의 비난이 많았다. 하지만 현 실장은 미래 먹거리를 위한 이 회장의 결단이라고 단언했다. “이 회장은 공상과학영화를 즐겨 봤는데, 거기에 나오는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조만간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가 사람들 사무실이 된다고 했다. 운전자가 없어도 차가 굴러가는 무인자동차 얘기도 여러 차례 했다. 이 회장이 미래형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지금의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차를 그때 생각했다는 의미다. 전기자동차 얘기는 1994년 8월의 사장단 회의 자료에도 나온다. 2차전지 사업 추진전략에 ‘1998년 이후 전기자동차 사업에 참여토록 함’이라고 명기돼 있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 먹여 살린다”

1994년 8월 삼성 비서실 기획팀이 작성해 사장단회의에 보고한 ‘그룹 사업구조조정 계획안’에 첨부 된 그림.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사업구조 혁신 구상이 이 한 장의 그림에 집약되어 있다. 전자와 기계, 화학 등 3개 사업은 항공모함처럼 삼성의 핵심 사업이므로 확실히 키우고 무역과 금융업은 순양함과 보급선단이라며 계속 끌고 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삼성 그룹의 사업구조 골간이 이때 짜여졌으나 자동차 등 일부 구상은 외환위기와 빅딜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사진 현명관]

1994년 8월 삼성 비서실 기획팀이 작성해 사장단회의에 보고한 ‘그룹 사업구조조정 계획안’에 첨부 된 그림.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사업구조 혁신 구상이 이 한 장의 그림에 집약되어 있다. 전자와 기계, 화학 등 3개 사업은 항공모함처럼 삼성의 핵심 사업이므로 확실히 키우고 무역과 금융업은 순양함과 보급선단이라며 계속 끌고 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삼성 그룹의 사업구조 골간이 이때 짜여졌으나 자동차 등 일부 구상은 외환위기와 빅딜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사진 현명관]

물론 사업적 동기도 있었다. 이 회장은 “일본은 자동차와 전자산업이 제조업의 두 축이다. 수출과 고용의 비중이 50대 50이다. 그런데 우리는 전자산업 비중이 훨씬 더 크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진출하면 치열한 경쟁으로 자동차의 비중이 올라갈 것이라는 의미다. 이 회장은 또 “앞으로 자동차는 기계가 아니라 전자제품이다. 우리는 삼성전자 기반을 갖고 있으니 자동차를 미래의 먹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빅딜’ 정책으로 삼성자동차는 1999년 6월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막을 내렸다. 현 실장은 “이 회장의 구상대로 자동차산업이 굴러갔다면 지금쯤 테슬라를 앞섰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경영구조와 관련해 이 회장이 특히 관심을 기울인 건 기술과 인재였다. 기술과 인재 중시는 질 경영에서는 당연한 수순이다. 세계 1등이 되려면 일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인재와 기술 투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기술과 인재에 베팅하고 이를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려면 조직 자체가 기술을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인사나 재무 등의 관리직과 상경계 출신이 독차지하던 삼성 계열사들의 CEO 구성에서 기술직과 이공계 출신의 비중이 크게 높아진 이유다. 특히 삼성전자는 ‘테크노 CEO들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이 회장은 “전자 CEO는 기술의 진행 방향을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술직 우대 풍조가 확실히 조성됐다.

이 회장은 늘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하는 사람이 일류여야 기업이 일류가 된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밝혔다. 현 실장은 “이 회장은 ‘고등학교 3학년 중 천재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뽑아서 키워라’고 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이 창조의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연재에서 살펴봤듯 신경영은 조직의 패러다임을 확 바꿨다. 삼성을 세계 일등 기업으로 만든 비결이다.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모든 걸 다 걸었다. 왜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임직원들에게 줄기차게 설명하고 설득했다. 세계 일등이라는 비전을 갖고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변방의 최빈국에서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2000년 이후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초일류 국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혁신이다. 우선 모든 국민이 ‘등에 진땀이 흐를’ 정도의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똘똘 뭉쳐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도자는 세계 일류국가라는 목표를 내걸고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변화를 위한 메시지와 실천 전략을 계속 내놓아야 한다. 삼성 신경영을 돌아보며 되새기는 교훈이다.

※정리: 김영욱 기업과제도연구소 대표·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현명관

현명관

현명관 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시작할 당시 삼성종합건설 사장이었다. 이후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을 거쳐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상근 부회장과 한국 마사회 회장을 지냈다. 신경영 초기의 자료를 중앙SUNDAY에 제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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