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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프리즘] 아이 둘 키워보니 기쁨도 배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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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4호 30면

민세진 동국대 교수

민세진 동국대 교수

수능이 끝났다. 큰애의 인생 두 번째 수능이었다. 작년에는 12년 학교생활 중 처음으로 보온 도시락통을 사면서 한참을 검색하고 도시락 싸는 연습까지 했는데, 올해에는 있는 도시락통에 작년처럼 준비하니 부담이 없었다. 주말에 있는 논술시험도 알아서 다녀오겠다고 한다. 부부가 주차 작전까지 세워 차로 모셔가고 모셔오고 했던 작년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워진다고 한다. 필자는 육아만큼 그 원리를 분명히 깨달은 적이 없다. 큰애보다 둘째 키우기가 덜 힘들기 때문이다. 큰애와 둘째가 터울이 있다 보니 부모가 그만큼 나이 들어 체력이 좀 떨어졌다는 정도일까, 아이들이 입맛부터 성격까지 완전히 다른데도 그렇다.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그에 수반되는 평균적인 비용이 감소할 때 경제학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있다고 표현한다. 육아라는 육체적, 정신적 노동은 꽤나 규모의 경제가 나타나는 분야다.

큰애보다 둘째 키우기가 덜 힘들어
하나보다 둘이 낫다고 설득하고파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충격이었는데 올해 합계출산율은 0.6명대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저출산이라 부르든, 저출생이라 부르든 이것이 대한민국 미래에 가장 암운을 드리운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현상은 저절로 태어난 아이의 숫자가 아니라 아이를 갖고 낳는 선택의 결과라는 점에서, 필자는 저출산 문제가 더 맞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출생이란 표현으로 자칫 출산을 둘러 싼 모든 고민, 의지, 책임이 흐릿하게 되는 것이 문제 완화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저출산의 문제는 출산 결과를 집계하고 보니 국가의 존속을 위협할 만큼 심각하다는 것이지, 개인의 선택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손실이 아이로부터 얻는 이득보다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출산을 회피한 것이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결혼하기 어려운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지만, 혼인한 부부의 출산율조차 떨어지는 걸 보면 결혼율 저하에만 원인을 돌릴 수는 없다.

아이가 기쁨이자 행복이라는 명제가 공감대를 잃은 것이리라.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에 아이로부터 얻는 이득이란 기쁨과 행복밖에 없는데, 세상에는 금쪽이들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가까운 곳에서 긍정적인 선례를 찾기도 녹록치 않다. 내가 결혼하고 너를 낳아 키워서 참 행복하다며 결혼과 출산을 권하는 부모가 지금 얼마나 될까. 결혼과 출산이 당연했던 시절 부모의 결혼생활에서 청년은 명쾌하게 행복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시절 자식은 희생으로 키우는 대상이었고, 그 반대급부처럼 부모의 희생에 감사하는 교육과 문화도 있었다. 이제 희생도 감사도 당연하지 않다.

지금의 저출산 현상은 결혼과 출산이 당연했던 시절에 대한 심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결혼과 출산이 선택의 대상이 된 순간부터 행복에 대한 계산식이 돌아가는데, 마이너스 결과가 잦은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행복에 보탬이 된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비용을 낮춘다고 아이를 낳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진국들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보면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배우자와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미혼보다 행복하다고 통계적으로 나온다.

아이 둘을 키우며 보니 그 기쁨과 행복은 아이 한 명만 있을 때의 두 배 이상이라고 확신이 든다. 키우는 수고로움은 확실히 두 배가 되지 않는다. 물론 낳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고, 20년의 데이터가 축적되고 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국가적 위기가 아니라면 굳이 훈수할 마음이 들지 않았겠지만, 부부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아이가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역설하고 싶다. 해보니 하나보다 둘이 낫다고도 설득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격려가 되는 경험이면 좋겠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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