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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000m갱도서 동료 죽음 지켜봐”..군함도 징용 생존자 이인우 옹 별세

중앙일보

입력

일제시대 징용 피해자 이인우 옹. [사진 이씨 유족]

일제시대 징용 피해자 이인우 옹. [사진 이씨 유족]

일제 시대 군함도 징용 생존자인 이인우 옹이 지난 15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이씨 유족 등에 따르면 대구 동구 살던 이씨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씨의 유족은 “평소 지병도 없었고 정정하셨다”며 “평소처럼 점심을 드시고 낮잠을 주무셨는데 기척이 없어 가보니 숨을 쉬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제 시대 징용 피해자다. 1944년 사할린을 거쳐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端島)에 강제 징용됐다. 군함도는 야구장 2개 크기의 섬(남북 약 480m, 동서 약 160m)으로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 떨어진 곳에 있다. 19세기 후반 미쓰비시 그룹이 이곳을 탄광사업으로 개발해 큰 수익을 올렸다. 1960년대 일본 석탄업계 침체로 1974년 폐광됐다.

일본 하시마(端島)섬 강제징용 생존자 이인우 옹이 2017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 하시마(端島)섬 강제징용 생존자 이인우 옹이 2017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중앙포토.

이씨는 2017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돈을 벌 수 있다길래 부산에서 화물선을 타서 내려보니 러시아 사할린 탄광이었다. 영하 40도의 추위와 싸우며 일을 하다 이후에 영문을 모른 채 옮겨졌는데 군함도였다”고 징용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훈도시(일본식 속옷)차림에 장비를 들고 해저 1000m로 석탄을 캐러 들어갔다. 구타가 일상이었고, 동료 죽음도 목격했다고 한다. 1945년 8월 27일에서야 이씨는 고국 땅을 밟았다.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씨는 당시 이렇게 말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수십 년 동안 하시마 강제 징용이 뭔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 나는 애국자가 아니라 생존자일 뿐이야. 다만 이 나라가, 젊은 사람이 우리가 이런 일을 겪었다는 걸, 하시마 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싶어. 나라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이미 너무 늦었어. 다 죽고 아무도 없잖아. 한 10년 전에만 이야기가 나왔어도 서로 얼굴도 보고 그럴 텐데….”

이씨가 별세하면서 군함도 국내 생존자는 4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2018년 1월 군함도 강제노역 피해자 최장섭 옹이 별세했다. 이씨의 발인은 18일. 대구 명복공원에서 화장하고 영천호국원에 안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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