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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불 탄 종과 돌아온 의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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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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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춘천에 갈 일 있으면 국립춘천박물관에 들러보시길. 12월 25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오대산 월정사: 절, 산속에 피어난 이야기’에 오대산 중심의 불교 신앙과 지역 문화가 잘 정리돼 있다. 국보 ‘상원사 중창 권선문’ 등 57건 108점을 만날 수 있다.

이 가운데 선림원터에서 출토된 종이 있다. 통일신라기인 804년 제작됐다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희귀 유물이다. 지금은 원형을 몰라보게 너덜너덜 찌그러졌다. 처음 발견된 건 1948년.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 위치한 선림원터에서 찾았을 당시만 해도 몸통에 새겨진 비천(飛天) 무늬까지 유려한 형태를 자랑했다.

강원도 선림원터에서 출토된 범종. 통일신라기인 804년 제작됐으며 한 국전쟁 중에 불에 타 형태를 잃었다. [사진 국립춘천박물관]

강원도 선림원터에서 출토된 범종. 통일신라기인 804년 제작됐으며 한 국전쟁 중에 불에 타 형태를 잃었다. [사진 국립춘천박물관]

종의 운명은 인근의 월정사에 옮겨 보관한 지 3년 만에 바뀌었다. 1951년 1·4 후퇴로 퇴각하던 국군이 행여나 북한군의 은신처가 될까 우려해 천년 고찰을 불살랐다. 범종도 함께 불탔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된 종은 50년간 수장고에서 잠들었다가 2002년 춘천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옮겨 왔다. 전시장에서 만난 ‘비운의 종’은 1200년 전 통일신라의 영광 못지않게 오대산을 둘러싼 현대사의 질곡을 침묵 속에 증언해줬다.

강원도에 돌아온 사연 많은 유물은 또 있다. 지광국사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 고려의 가장 아름다운 사리탑으로 불리는 이 유물은 일제강점기 때 서울 경복궁 뜰로 옮겨갔다가 한국전쟁 중에 폭격을 맞아 산산이 조각났다.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수년간의 해체 수리 복원 끝에 지난 6월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으로 탑의 부재(部材)가 귀환했고 조만간 재조립을 앞두고 있다.

얼마 전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도 110년 만에 ‘귀향’했다. 110년이란 건 일제가 오대산사고본을 일본으로 반출한 1913년을 기준으로 했을 뿐, 실은 한일강제병합 직후 조선총독부는 모든 왕실 장서를 경성(서울)으로 모았다. 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유 유물은 해방 후 국립박물관이나 문화재청 산하 기관에 속하게 됐다. 만들어질 당시엔 종교·의례·기록 등 다양한 용도였을지라도 ‘문화재’가 된 이상 함께 누리고 가치를 이어가게끔 국가가 책임지고 보존·관리하려는 취지다.

그러니 일본에서 발견돼 국유 문화재로 환수된 오대산사고본을 두고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돌아감)’만 강조하면 의미가 되레 퇴색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월정사 성보박물관 옆에 안식처를 갖게 된 오대산사고본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더 이상 지역색이나 종교 후광을 덧입기보다 국립박물관 소장품으로서 국내외에서 두루 사랑받길 바란다. 찌그러진 종도, 조선 500년 실록도 가치를 공유하는 이가 많을수록 두고두고 보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