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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중국에선 ‘객기’를 부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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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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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객기’ 부리세요, 중국에서는!

글자는 같지만, 문화가 다르면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도 역시 한자를 쓰고 있다. 그래서 중국어는 잘 못해도 문서화된 문장은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우리와 똑같은 한자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 한자(혹은 문장)가 의미하는 것도 같을 것이라고 추측하면 절대 안 된다. 때로는 어떤 문장은 중국인들마저 헷갈리게 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해석이 모두 가능한 경우도 있다.

주위에 큰소리치는 이들이 있다. 능력이 안 되면서 “내가 할 수 있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는 “괜한 객기부리지 말아라”라고 조용히 타이르고 싶다. 객기(客氣)는 사전적 의미로는 ‘객쩍게 부리는 혈기나 용기’이다. 분수에 넘치게 자신만만하게 나대는 행동을 말한다. 한자를 직역해 보면, ‘객(客, 손님)’과 ‘기(氣, 기운 또는 기세)’로서 객기는 ‘손님의 기세’ 즉 ‘손님의 티’다. 좀 더 풀어보면 ‘객기부리지 마라’는 ‘손님처럼 행동(행세)하지 말아라’, ‘손님처럼 그렇게 혈기부리지 마라(너 자신을 뽐내려 하지 마라)’, 또는 ‘손님처럼 나대지 말아라.’다.

不要客气(사양하지 마세요) 또는 你太客氣(지나친 겸손하십니다) 등은 아마도 중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그리고 일상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현일 것이다. 직역하면 각각 “객기 부리지 마세요”와 “당신은 너무 객기부리고 있네요”이다. 중국말의 객기는 겸손함이다. 중국인이 느끼는 ‘손님 행세 또는 손님의 행동’은 겸손한 모습이었나 보다. 직역은 우리와 같은데 의미는, 우리말로는 오만한 행동에 대해 ‘객기’로 표현하는 반면, 중국은 겸손한 모습을 나타낸다.

거의 정반대이다. 결국 不要客气(부 야오 커치) 또는 你太客氣(니 타이 커치)라는 중국말은 “사양하지 마세요” 또는 “너무 겸손하시네요” 등의 의미가 된다. 예의를 갖추고 사양하거나 겸손함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객기’는 우리말로는 건방 떠는 모습인데, 중국말로는 겸손함을 나타낸다. ‘객기’가 ‘손님 행세’ 또는 ‘손님 티’라는 글자의 의미는 같은데, 상반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왜일까?

우리나라와 중국인들이 연상하는 ‘손님(客)’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과거 중국의 사신(使臣)들이나 손님들은 우리나라를 얕잡아보고 큰소리를 많이 쳤다. 그래서 ‘손님 티’는 잘난 척하거나 큰소리를 치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반대로,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국인 자기 나라를 찾아오는 외국 손님들은 중국보다 소국이므로 겸손해하고 어려워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인들에게 ‘손님 티’는 ‘겸손함, 또는 어려워함’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문자는 같고, 원래 의미도 틀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상이한 문화 속에서 다른 의미가 되어 버렸다.

중국과의 축구 경기에서 ‘필승 코리아’를 외쳐 보면, 어떤 일이 생길까?

다음 달에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은 중국과 월드컵 예선전을 치른다. 중국은 한때 공한증(恐韓症, 한국을 무서워하는 증세)을 언급하며 우리나라 축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비판 일변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공한증이라는 용어는 예전처럼 유행되지 않는다. 한국 축구의 압도적 우세를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포털에는 손흥민의 기사(혹은 쇼츠)가 종종 기사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실력이 압도적이다 보니 손흥민이나 이강인 같은 선수들에 대해서는 존경하고 부러워한다. 축구에서 우리나라만 콕 찍어 미워하는 ‘혐한(한국을 미워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실력이 있으면, 제품력 자체가 뛰어나면, ‘혐한은 없다(아무리 양보해도 ‘혐한 감정은 미미한 수준이다)’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강조되는 ‘중국인들의 혐한증’은 중국 현지에서의 일상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 예선전은 중국에서 어웨이 경기로 치러진다. 그들은 당연히 자국팀을 응원할 것이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응원단이 만약 "필승 코리아"라고 외친다면 어찌 될까? 중국인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필승 코리아” 즉 “한국! 반드시 이기자!”라는 구호는, 중국인에게는 달리 들린다. 중국어 문법상 “필승 코리아”는 “반드시 한국을 이겨라”라는 뜻이다. 대놓고 “한국 져라”고 야유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며, 중국인들은 “이게 뭐지?”라며 갸우뚱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중국 경기장에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보자. 어쩌면(사실 지나친 상상이지만 어쨌든) 경기장의 모든 중국인도 따라 할 지도 모른다. 우리 선수도, 중국 선수들도 모두 관중들의 격려에 더욱 힘내고 감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것도 win-win이 아닐까?

조삼모사(朝三暮四)

또 다른 해석이 있다. 조삼모사는 원래 win-win의 사례다?
송나라 때 저공(狙公)이라는 이가 여러 마리의 원숭이를 길렀다. 먹이가 부족해지자 “이제부터는 아침에 3개 주고, 저녁에 4개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화를 냈다. 저공이 아이디어(?)를 내서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기뻐하며 만족했다는 잘 알려진 고사다. 얕은꾀로 상대방을 속이려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비유다.

한편, 여기에서는 원숭이의 어리석음도 지적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읽은 글에서는 원숭이는 아침에 많이 먹고 저녁에는 덜 먹는다고 한다. 어차피 먹이의 총량이 같더라면, ‘조사모삼(아침 4, 저녁 3)’이 ‘조삼모사(아침 3, 저녁 4)보다 분명 나은 옵션이다. 원숭이들로서는 더 좋은 옵션이다. 주인이 먹이를 제대로 줄 처지가 아닌 것을 파악하고, 그 현실을 인정하고 최대한의 제안을 제시한 원숭이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지혜롭다. ‘조사모삼’은 쌍방이 만족하는 최적의 방안이며, win-win의 좋은 사례다.

富不到三代(부자 3대 못 간다)

삼대(三代)를 못 가는 것은 같지만, 그 이유는 양국이 다르다
아무리 돈이 많은 집안도 3대 가는 경우가 없다는 말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참 많이 들었다. 이 말대로 3대를 못 가고 망하는 집안을 적지 않게 보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격언도 이제는 신통하지가 않다. 요즘은 부나 권력들이 대대로 세습이 잘(?)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체로 ‘자식 혹은 손자(혹은 손녀)’ 세대에서 나태함과 무능력으로 인해 3대가 못 가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부자 3대 못 간다’는 것은, 중국에서는 그 이유가 원래는 달랐다고 한다. (즉, 자식들의 나태와는 상관없이) 상속을 할 때 자식들에게 균등 배분하면서 비롯된 말이라는 설이 있다.

과거 부자와 권력자들은 자식들이 많았다. 10명씩 자식을 낳았다면, 아들들은 각각 1/10의 재산을 상속받게 될 것이고, 손자대(代)인 3대에 이르러서는 각각 1/100로 쪼개진 재산을 나누게 될 것이다. (5명만 낳았다고 해도, 어쨌든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재산도 권력도 자식들에게 균등 배분하면, 3대째 손자의 몫은 쪼그라들게 되고, 결국은 더는 부자 집안이 아니다. 권력도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이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은, 한나라 무제가 ‘추은의 영(推恩之令)’이라는 분할상속이라는 법령을 발표하자 등장했다는 것이다. 지방의 권력자들이 다음 세대로 상속을 할 때마다. 한 명에게 쏠렸던 권력과 부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결국 한나라의 중앙집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는 설이다.

상이한 두 개의 해석이 ‘모두 맞다’는 모순도 종종 있다.

“〈주역〉에서는 변화를 ‘易而不易, 不易而大易’으로 요약합니다.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바로 그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다운 역(大易)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변하지 않는 것도 크게 보면(大) 변한다(易)’ 앞의 해석은 퇴계 이황의 것이고 뒤의 해석은 다산 정약용의 것입니다. 퇴계는 불변에, 다산은 변화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담론〉 신영복)”

저명한 작자인 무라타 사야카는 자신의 20년 편의점 알바를 경험으로 〈편의점 인간〉이라는 중편 소설을 써냈다. 작가는 오래전에 자주 찾았던 고객이 가게에 들어오면서 “여기는 변함이 없네요”라고 말을 하자, 다음과 같은 독백을 한다. “가게를 오픈했을 당시의 것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줄곧 있긴 하지만 조금씩 교체되고 있다. 그것이 ‘변함없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다.

어쨌든, 성리학과 실학의 최고봉인 두 학자의 해석은 모두 맞다. 다만, 그들의 관점이 다르다 보니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이겠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의 의미는?

출세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됨” 또는 “숨어 살던 사람이 세상에 나옴”이라고 국어사전(네이버)에 나와 있다. “출세는 동아시아 고유의 문화 현상이다. 직역하면 ‘세상에 나온다’는 뜻으로 일반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가리킨다(나무위키)”라고 설명한다. 어쨌든, 출세는 ‘세상으로 나온다’이다. 그러면, 성경의 ‘출애굽’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출애굽은 ‘애굽으로부터 나오다’이지 ‘애굽으로 나오다(즉 들어가다)’가 아니다!

중국어로 출세(出世)는 우리와 딱 반대의 의미라서, ‘세상으로부터 나오다(즉, 숨다)’의 뜻이다. 우리말의 출세는, 중국어로는 입세(入世. 세상 속으로 들어가다. 세상으로 나오다)이다. 언제부터 뜻이 이렇게 갈라졌는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의 출세는 ‘세상을 떠나는 것, 즉 속세를 등지는 것’이다. 최소한 ‘출’자의 활용에서는 중국말이 일관성이 있다.

겸손함은 미덕이다. 중국에서 ‘객기부리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어 보자

중국어를 조금 배우고 나서 우쭐하는 분들이 있다. 중국어를 잘하기는 어렵다. 잘하면 좋지만, 서툴면 ‘서투르다’고 인정하고 겸손하게 도움을 요청하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영어를 못하면 구박받고 주눅이 들지만, 중국에서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중국어를 못한다고 차별하는 장면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중국인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가진 이들도 당연히 있다. 손꼽히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오만하다’일 것이다. 30여년 전 중국이 개방하고, 경제력이 지금 같지 않았던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에서 솔직히 건방을 떨었다. 우리말로 ‘객기를 부린’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당당함과 투지와 끈기 등등의 미덕(?)은, 중국인들에게 자칫 지나친 ‘자신감’과 ‘오만함’으로까지 비칠 수 있다. 이런 오해는 시간이 가면서, 서로 친구가 되어가면서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무시하는 오만함은 안 된다. 서로 존중해야 한다.

본 칼럼에서 한문(漢文)을 잘 아는 듯해도 조심해야 할 부분들이 있음을 소개했다. 양국의 정치외교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민간의 우정과 win-win의 실익을 나누는 교류는 지속하여야 한다. 양국민간 교류의 유지 발전은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과거 한때 (솔직히 지금도 일부는 여전히) 우리말의 객기를 부렸다면, 이제는 중국어로의 ‘객기(겸손함)’를 부려보자. 중국인들에게 ‘당신은 너무 객기를 부리는군요(你太客气)‘라는 말도 자주 듣도록 해 보자.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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