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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간 이별'이 '부모와의 이별' 안 되려면…면접교섭, 독일·싱가포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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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열린 서울가정법원 국제콘퍼런스 모습. 왼쪽 네번째부터 윤진수 서울대 명예교수, 케네스 옙 싱가포르 가정법원 판사, 버나뎃 드수자 뉴올리언스 가정법원 판사, 카렌 빌다 함부르크 지방법원 판사,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서울가정법원 제공]

15일 열린 서울가정법원 국제콘퍼런스 모습. 왼쪽 네번째부터 윤진수 서울대 명예교수, 케네스 옙 싱가포르 가정법원 판사, 버나뎃 드수자 뉴올리언스 가정법원 판사, 카렌 빌다 함부르크 지방법원 판사,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서울가정법원 제공]

“면접교섭은 아동에게 자신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느끼고 이해할 기회, 어떤 부모·자식 관계로 나아갈지에 대한 풍부한 선택지를 가질 기회를 보장하는 것입니다.(니노미야 슈헤이 리츠메이칸대 명예교수)”

“면접교섭은 아동에게 부모 간 이별이 곧 부모와의 이별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해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핵심적 장치인데도, 그간 연구자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현소혜 성균관대학교 교수)”

15일 서울가정법원이 개원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 주제로 ‘면접교섭’을 선정하고 국내외 법학자와 실무자들을 초청해 의견을 나눴다. 이날 콘퍼런스에는 전국 가정법원 판사 등 이 문제를 실무적으로 접하는 이들이 다수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아동 기본권이지만…안 만나는 부모가 더 많아 

면접교섭권, 즉 이혼 후에도 자녀와 만날 권리는 1990년 민법에는 부모의 권리인 것처럼만 쓰여 있었지만(‘자(子)를 직접 양육하지 않는 부모 중 일방은 면접교섭권을 가진다’), 2007년 개정을 통해 아동의 권리로도 인정되고 있다(‘직접 양육하지 않는 부모 일방과 자는 상호 면접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윤진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면접교섭권이나 자녀의 부모에 대한 면접교섭권은 모두 헌법에서 도출되는 기본권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혼 후 자녀와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만나는 건 열 명 중 서너 명에 그친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경우는 64%에 달했다.

현소혜 교수는 “어떤 사람은 더는 배우자가 아니라도 부모 역할 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이혼한 배우자로서의 관점을 부모에도 투영해 양육, 면접교섭을 손쉽게 포기하기도 한다(현소혜 교수)”고 말했다. 니노미야 슈헤이 교수는 “함께 살지 않는 부모와 아동의 면접교섭은 즐겁지 않아지거나 지속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전문적인 제삼자 관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정법원의 이혼 접수실. [사진 대법원 영블로거위원회]

가정법원의 이혼 접수실. [사진 대법원 영블로거위원회]

면접교섭보조인·정부 프로그램·민간 지원 등 제삼자 관여 

독일에는 ‘면접교섭보조인(Contact supervisor)’ 제도가 있다. 카렌 빌다 함부르크지방법원 판사는 “부모가 ‘올바른 행동 의무’를 위반할 경우, 법원이 면접교섭보조제도를 명령해 보조인이 아이를 한 가구에서 다른 가구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한 부모와만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감독한다”고 말했다. 올바른 행동 의무란 ‘부모는 부모 중 다른 일방과 자녀의 관계를 침해하거나 양육을 어렵게 하는 모든 조치를 중단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면접교섭보조인 제도는 2015년 우리 대법원이 도입하려 했으나 법무부 개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해 도입되지 못한 제도다.

싱가포르에서는 정부가 함께 나서 배우자로서의 자아와 부모로서의 자아를 분리해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돕는다. 케네스 얩 싱가포르 가정법원 판사는 “갈등하는 부모는 서로에 대해 힐난하기 때문에 사회과학을 전공한 중립적 당사자가 가정에 대한 일종의 포렌식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에 따라 법원은 치료적 개입을 명령한다”며 “사회가족부의이혼지원 전문기관의 감독 하에 면접교섭을 진행하거나 가족서비스센터 상담사의 가족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정부 돈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쓰루오카겐이치 공익사단법인 가정문제정보센터 전무이사는 민간 영역에서의 지원을 소개했다. 아이와 함께 살지 않는 부모가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센터 지원자가 공원이나 키즈카페 등에서 함께 만나 놀거나 대화하는 걸 돕거나(동행형), 양 부모 사이에서 자녀를 데려다주거나(인도형), 일정 조정만 돕기도 한다(연락조정형). 단계는 동행형→인도형→연락조정형으로 나아가 종국에는 부모끼리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다만 그는 “제삼자는 가능하면 법원, 행정부처, 지방공공단체가 지원해 공적 사업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런 지원 사업은 한정적이므로 민간기관이 개별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엔 면접교섭보조인 도입 아직…개선점 남은 면접교섭센터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 내에 있는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 정문. 김민상 기자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 내에 있는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 정문. 김민상 기자

 국내에는 가정법원이 운영하는 면접교섭센터가 있다. 법무법인 광장 배현미 변호사는 “센터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법원 내 교섭센터에서 월 2회, 6개월간, 회당 1~2시간으로 면접교섭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 서비스는 첫선을 보인 2017년에는 286명이 이용했으나 지난해에는 2043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런 지원이 있어도 안 만나는 사람이 있고(자녀가 원한다고 해도 부모가 신청해야 진행 가능), 만나려 해도 이용이 불편한 사람도 있다(거주 지역에 서비스 지원기관이 없는 경우). 김숙자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관은 이런 문제에 더해 센터 종사자의 전문성 강화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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