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극장으로 웅장하게 돌아왔다...창극 '패왕별희'의 재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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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만 개가 꽂힌 것 같다. 산을 뽑을 힘이 무슨 소용인가, 사랑하는 이 한 명도 지키지 못하거늘…"

숨이 꺼져 가는 우희를 끌어안고 항우가 울부짖는다. '전쟁의 신'이라고 불린 항우지만 전세가 기울었음을 직감하고 자결을 택한 우희를 막지 못했다. 경극 '패왕별희'의 제목은 이 장면에서 나왔다. 패왕 항우가 우희와 이별한다는 뜻이다.

창극 '패왕별희' 중 항우(정보권)가 죽은 우희(김준수)를 끌어안고 절규하는 모습. 항우의 연인 우희는 전세가 기울었음을 직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진 국립극장

창극 '패왕별희' 중 항우(정보권)가 죽은 우희(김준수)를 끌어안고 절규하는 모습. 항우의 연인 우희는 전세가 기울었음을 직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진 국립극장

경극과 창극의 만남으로 초연부터 호평받았던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가 돌아왔다. 2019년 4월 초연, 같은 해 11월 재연 이후 4년 만이다. 50년 경력의 경극 배우이자 대만 당대전기극장 대표인 우싱궈가 연출을, 소리꾼 이자람이 작창과 음악감독을 맡아 춘추 전국 시대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 초나라 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려냈다. 전반적으로 의상·분장·안무 등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경극의 매력을 살렸고 소리와 대사, 음악은 창극의 문법을 썼다.

총 7장으로 이뤄진 공연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6장 '패왕별희'다. 항우(정보권)는 전세가 기울었음을 한탄하며 우희(김준수)와 함께 최후의 술잔을 기울이고, 우희는 항우의 검을 뽑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화살 만 개가 꽂힌 것 같다"며 울부짖는 항우의 목소리를 들으면 절절한 슬픔을 표현하는 데 창(唱)보다 효과적인 도구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패왕별희' 공연 포스터. 사진 국립극장

국립창극단의 창극 '패왕별희' 공연 포스터. 사진 국립극장

우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항우를 격려하기 위해 양손에 긴 칼을 들고 '쌍검무'를 추는 장면에서는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준수는 초연 당시 섬세한 손짓 연기와 고난도 검무를 소화하며 "중국의 전설적인 경극 배우 메이란팡을 떠올리게 한다"(우싱궈 연출)는 찬사를 받았다. 김준수는 남자 배우들이 여자를 연기하는 경극의 전통에 따라 우희 역을 맡았다.

창극 '패왕별희' 중 우희(김준수)가 검무를 추는 모습. 사진 국립극장

창극 '패왕별희' 중 우희(김준수)가 검무를 추는 모습. 사진 국립극장

정보권도 호방한 매력의 전쟁 영웅 항우를 안정적으로 연기한다. 세상을 호령하는 듯한 우렁찬 소리에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경극 특유의 손짓과 몸짓을 자연스럽게 섞었다. 전쟁의 허무함을 노래하는 맹인 노파(김금미), 유방의 책사 장량(유태평양) 등 조연들의 연기도 탄탄하다.

삼연인 이번 시즌에는 처음으로 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기며 극이 한층 웅장해졌다. 한나라와 초나라 병사들의 화려한 깃발 군무와 전투 장면을 보강했고, 비파와 철현금 대신 생황과 태평소·대아쟁 등을 편성하고 타악 구성에 변화를 줘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시즌 첫 공연일인 11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자람 음악감독은 "평소에는 작창을 할 때 빈틈없이 채워서 하는 편인데 '패왕별희'는 경극 특유의 움직임이 잘 보일 수 있도록 노래와 노래 사이를 조금씩 띄워놨다"며 "귀로는 창극의 매력을, 눈으로는 경극의 매력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퓨전 느낌을 빼고 정통 판소리로만 승부를 본 장면도 있다. 이자람 감독은 "2장 홍문연 잔치는 판소리 위주로 연출했다"며 "판소리 하나 만으로도 꽉 차는 느낌을 보여드리고 싶어 일부러 악기도 힘을 뺐다"고 설명했다.

창극 '패왕별희' 중 초나라 패왕 항우가 결투에 나선 모습. 사진 국립극장

창극 '패왕별희' 중 초나라 패왕 항우가 결투에 나선 모습. 사진 국립극장

화려한 무대 의상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의상디자인을 맡은 예진텐은 영화 '와호장룡'으로 제73회 아카데미 미술상을 받은 디자이너다. 예진텐은 중국 특유의 화려한 색감에 한복의 고운 선이 녹아든 독특한 의상을 선보였다. 극본을 쓴 린슈웨이는 경극 '패왕별희' 원작 대본을 바탕으로 유방의 장수 한신 이야기 등을 추가해 역사를 잘 모르는 관객들도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 쉽도록 각색했다.

공연은 18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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