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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1병에 10억, 일본산이라고? 오타쿠가 만든 위스키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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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산토리 프리미엄 위스키

브랜드로 본 세계

요즘 도쿄에 가는 한국 여행객들이 제일 많이 묻는 게 “히비키랑 야마자키는 어디서 살 수 있어?”랍니다. 일본 주류업체 산토리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위스키죠. 하지만 아무리 ‘수퍼 엔저’인들 이 위스키들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레어템’입니다. 주류 세계 ‘듣보잡’ 일본 위스키가 경매에서 1병 10억원에 낙찰될 만큼 우뚝 서게 된 100년 역사를 짚어봅니다.

산토리 양조장

산토리 양조장

코로나19가 끝난 후 도쿄로 밀려드는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히비키(響)와 야마자키(山崎)를 살 수 있느냐다. 젊은 친구들은 편의점에서도 가쿠빈(角瓶)을 파냐고 묻는다. 히비키와 야마자키는 산토리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위스키다. 주로 하이볼의 재료로 쓰이는 가쿠빈은 산토리의 효자 상품이다.

위스키 원액은 보통 10년 이상의 숙성이 필요하다. 한정된 원액으로 만들 수 있는 양은 제한돼 있는데 찾는 사람은 많다보니 결국 산토리사는 2018년 주력 상품이던 ‘히비키 17년’의 생산·판매를 중지했다. 산토리가 2020년 100병만 한정 판매한 ‘야마자키 55년’은 정가가 2만7500달러(약 3700만원)였는데 이후 홍콩의 한 경매에서 79만5000달러(약 10억원)에 낙찰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위스키 반열에 올랐다.

일본 위스키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두 사람이 있다. 산토리 창업자인 도리이 신지로(1879~1962)와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케쓰루 마사타카(1894~1979)다.

산토리 창업주 도리이 신지로(1879~1962).

산토리 창업주 도리이 신지로(1879~1962).

오사카 출신의 도리이는 향에 예민해 ‘오사카의 코’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899년 와인 수입을 하다가 일본 최초의 와인 ‘아카타마 포트와인’을 출시해 대박을 쳤다. 와인으로 번 돈으로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작정한 도리이는 스코틀랜드 유학파인 다케쓰루와 손을 잡았다.

다케쓰루는 히로시마 양조장집 아들로 가업을 잇기 위해 셋쓰주조라는 유명 술 회사에 취업했다. 2년간 글래스고대에서 위스키 제조법을 익히고 돌아왔지만, 전쟁으로 경영난을 겪던 회사가 위스키 제조를 포기하면서 갈 곳을 잃었다. 그를 찾아간 도리이는 신입사원 첫 월급이 40~50엔이던 시절, 10년 계약, 연봉 4000엔이라는 파격 제안으로 영입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두 사람은 1923년 오사카 인근에 지은 야마자키 증류소에서 6년간 두문불출하며 위스키 제조를 연구했고, 1929년 일본 최초의 위스키 ‘시로후다(白札)’를 내놓았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위스키의 맛과 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술에서 탄내가 난다며 외면했다.

실패 앞에서 결국 ‘동맹’은 깨졌다. 정통 스카치위스키를 재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다케쓰루는 독립을 선언, 스코틀랜드와 기후가 비슷한 홋카이도에서 자신만의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산토리 위스키와 함께 ‘재패니즈 위스키’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닛카(ニッカ) 위스키’가 이렇게 탄생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반면 도리이는 일본인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는 위스키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1937년 팔리지 않아 남은 위스키 주정을 오랜 시간 숙성해 출시한 ‘가쿠빈’이 홈런을 쳤다.

도리이는 ‘얏테미나하레(やってみなはれ)’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어디 한번 해봐”라는 뜻의 오사카 사투리다. ‘얏테미나하레’ 정신과 일본의 경제 성장이 맞물려 탄생한 것이 1984년 싱글 몰트 위스키 야마자키와 1989년 블렌디드 위스키 히비키였다. 산토리는 2009년부터 ‘하이볼’ 캠페인을 시작했다. ‘위스키=아재술’의 이미지를 벗고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였다. 산토리 하이볼은 한국의 MZ세대까지 사로잡았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히비키와 야마자키가 품귀현상을 빚자 ‘야먀자키를 마셔봤다’는 게 일본에서도 자랑거리가 됐다. 그러다 생긴 ‘사건’도 있다. 2019년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야마자키 25년을 선물했는데 이 위스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산토리의 2020년 한정판 위스키 ‘야마자키 55년’. 홍콩 경매서 10억 원에 낙찰됐다. [사진 산토리 홈페이지]

산토리의 2020년 한정판 위스키 ‘야마자키 55년’. 홍콩 경매서 10억 원에 낙찰됐다. [사진 산토리 홈페이지]

미국 관료들은 선물 가격이 390달러(약 51만원)를 넘으면 국고로 넘기거나 사비로 구입해야 한다. 당시 아베가 준 술은 무려 5800달러(약 774만원)짜리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나는 모른다”고 주장했지만 한동안 “몰래 마셔버린 것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프리미엄 위스키 ‘히비키’. [사진 산토리 홈페이지]

프리미엄 위스키 ‘히비키’. [사진 산토리 홈페이지]

2021년 총리직에 오른 직후 니혼TV의 한 뉴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머물던 의원 숙소를 찾았다. 평소 ‘정계 최고 주당’으로 불리는 기시다 총리인 만큼 집 안에 술이 가득했는데 와인셀러 위에 놓인 위스키 중에는 히비키 21년과 야마자키 25년도 있었다. 네티즌들은 “우리는 구경도 못 하는 고급 위스키가 널려 있네”라며 비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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