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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종 따라 엇갈리는 근무유연화…“적정 보상”vs“악용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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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경제 05면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쁠 때는 잔업 특근 많이 해서 돈 많이 벌고, 한가할 때는 또 재충전할 수 있고 괜찮을 것 같아요.” -자동차 협력업체 생산직 종사자 A(51)씨

“보상은 확실하게 해주되 근로자 본인의 의견을 존중해서, 할 수 있는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석유화학공장 생산직 종사자 B(29)씨

“(정부) 개편안처럼 특정 단위 총량제로 넘어가는 것은 후퇴하는 것 같아요.” -신발 제조업체 사무직 종사자 C(38)씨

“현재 제도가 정착하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들었고, 이제 적응이 됐는데 다시 개편해야 하나요. 근로자 대표도 생산직과 사무직을 따로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제약회사 사무직 종사자 D(41)씨

정부가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관련해 특정 업종·직종에 대해 선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가운데, 실제 일하는 방식에 따라 근로자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생산직일수록 확실한 보상이 동반된 유연화에 찬성하는 반면, IT·사무직일수록 현행 체제가 유지되길 바라는 경향이 있었다.

14일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 연구용역을 받아 진행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성 조사는 ▶IT·연구개발직 ▶제조 생산직 ▶사무직 ▶업종 무관 20·30세대 근로자 ▶업종 무관 40·50세대 근로자 ▶초3 이하 자녀를 둔 여성 근로자 등 8개 그룹 근로자 50여 명에 대한 그룹별 심층면접(FGI) 방식으로 이뤄졌다.

심층면접에 응한 근로자들은 공통적으로 “유연화를 한다면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연화에 부정적인 가장 큰 이유가 ‘정말 더 일하는 만큼 길게 쉴 수 있느냐’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확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연장근로 유연화를 ‘근로시간이 늘어났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근로자들을 입을 모았다. 같은 맥락으로 총근로시간이 단축돼야 한다는 의견도 대다수였다.

이에 따라 다수 근로자는 정부가 내세웠던 ‘유럽처럼 길게 일하고 한 달 휴가를 떠난다’는 개념보단, 필요할 때 연장근로를 하고 바로바로 쉴 수 있는 체계를 원했다. 실제 노동연구원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동의하는 근로자 24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확대 범위’에 대해 ‘월 단위’가 62.5%로 가장 많았고, ‘분기 단위’(14.5%)가 뒤를 이었다. ‘반기 단위’는 3.9%, ‘연 단위’는 4.8%에 불과했다.

업종에 따라선 의견차가 존재했다. 제조업 생산직의 경우 생산 물량을 맞추기 위한 특정 기간 잔업·특근이 많은 만큼, 연장근로를 유연화하는 대신 확실한 보상을 받아가는 것을 선호했다. 근로자에게 보상과 선택권이 부여된다면 유연화에 긍정적이라는 취지다.

반면 사무직은 대체로 현행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했다. 한 사무직 응답자는 “주 최대 52시간을 넘어설 경우 회사가 악용할 수 있고, 휴식권 보장 취지도 잘 안 지켜져서 결과적으로 휴식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에 노동연구원은 업종, 기업 규모, 사업 성격, 근무자의 특징 등을 고려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재민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업종과 직종을 고려해 연장근로 관리단위 선택권을 부여하고,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기 위한 주 상한 근로시간 설정 등 추가거인 건강권 보호에 대한 개선방안이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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