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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때 20대, 아직도 얹혀산다…5년새 50% 뛴 '4050 캥거루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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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40대 후반인 A씨는 편의점 외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는 70대인 부모와 함께 사는데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주로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대학 재학 중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 몇 년을 떨어지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도 했으나 40대를 넘어선 이후론 경제활동을 모두 그만뒀다.

21년차 상담사인 박대령 이아당심리상담센터 센터장이 전한 은둔 중년의 사례다. 박 센터장은 “은둔·고립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경제적인 상황, 노동 경험 등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좌절에 빠지게 되고 인간관계도 서서히 좁아지면서 고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20대는 지금 40~50대가 됐고, 코로나19에 최근 경기 둔화까지 겹치면서 중년 고립 은둔·고립 상담자는 증가 추세”라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23 중장년ㆍ어르신 희망 취업박람회'.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23 중장년ㆍ어르신 희망 취업박람회'. 연합뉴스

‘히키코모리 ’일본 뒤따라가는 한국

이미 일본에선 중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사회 문제로 자리잡았다. 2003년 청년층 히키코모리 개념이 일본에서 소개된 이후 20년이 지나면서다. 중국에선 전업자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자녀가 요리·청소 등 집안일을 하면서 부모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상황은 중국·일본과 다르지 않다. 13일 통계청 경제활동조사 분석 결과 9월 기준 쉬었음 상태에 있는 40대는 27만명으로, 5년 전인 2018년의 같은 달(19만5000명)보다 38.5% 늘었다. 쉬었음은 미취업 상태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구직활동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최근 취업자 수 증가세가 이어지는 등 고용이 호조를 보이는 상황을 고려하면 자발적으로 일을 안 하는 상태로 볼 수 있다.

부모 집 살며 쉬는 중장년 급증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자립하지 않고 부모 집에 살면서 구직은 포기한 중년 비중으로 보면 증가세가 더욱 가파르다. 이들이 사실상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한국의 ‘중년 캥거루족’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 집에 사는 40대 쉬었음 인구는 9월 기준 2018년 5만6000명이었다. 올해는 8만7000명으로 늘었다. 5년 새 3만1000명(55.4%) 증가해 해당 연령대 전체 쉬었음 증가세를 웃돌았다.

30대와 50대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부모 집에 사는 50대 미혼 쉬었음 인구는 같은 기간 1만8000명에서 3만2000명으로 77.8% 늘었다. 30대는 9만7000명에서 14만6000명으로 늘면서 50.5%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40~50대 중장년층 캥거루족의 증가율이 50%가 훌쩍 넘어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취업 실패 경험에 고립·은둔

거듭된 취업 실패 경험이 중년의 캥거루족을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건 아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급여·근로조건 차이가 벌어지면서 구직자가 원하는 자리는 한정됐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 따르면 40대 캥거루족이 구직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든 건 ‘원하는 임금수준이나 근로조건의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다. 청년 일자리와 고령 일자리는 있지만, 경력이 없는 중·장년이 취업할 곳은 제한됐다. 40~50대는 실업 상태가 길어졌을 때 사회 복귀 장벽이 두터워진다.

출생세대별 노인빈곤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개발연구원, 통계청]

출생세대별 노인빈곤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개발연구원, 통계청]

부모의 경제력이 과거 세대보다 올라간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이전 세대만 해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게 불가능했지만, 지금의 고령층은 자산을 쌓았거나 연금을 받는 경우가 늘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소득과 자산으로 진단한 노인빈곤과 정책방향’에 따르면 1940~1944년생의 2021년 기준 빈곤율은 51.3%였지만, 1950~1954년생의 경우 27.8%로 나타났다.

일할 사람 없는데…“복귀 지원해야”

‘경제 허리’인 중년층의 고용시장 이탈이 늘어나는 건 그 자체로 경제적 비용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8월 기준 구인난으로 인해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생긴 빈 일자리는 22만1000개다. 또 계속 일을 하거나 고임금은 보장받기 어려운 고령층에겐 자녀 부양 부담이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소비 위축으로도 이어진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40대는 부모가 경제력을 갖춘 경우가 많아 부모 집에 살면서 외부 활동을 안 하면 얼마든지 생활이 가능하다”며 “일본 중년 히키코모리 사례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이나 조직 부적응으로 사회와 단절된 사례가 많은데 한국도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빈 일자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도 고용시장에 복귀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청년만 집중, 중년은 통계도 없다

중년 캥거루족 증가세는 확연하지만, 실태 파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무조정실과 서울시는 지난해에서야 처음으로 청년 고립·은둔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마저도 15~39세 청년에만 한정했다. 2019년부터 중년 히키코모리 실태조사를 따로 진행하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조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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