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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 '회장님 롤렉스' 주인 됐다…29년 한 풀고 우승한 LG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올해 한국시리즈 최고의 화제는 '롤렉스 시계 주인공 찾기'였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은 1997년 해외 출장을 떠났다가 LG 트윈스의 세 번째 우승을 기원하면서 롤렉스 손목시계를 샀다. 당시 돈으로 8000만 원 상당의 고가였다.

구 선대회장은 이 시계를 구단에 건네면서 "다음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게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끝내 그 시계를 MVP에게 채워주지 못한 채 2018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LG 선수들은 모두 "내가 롤렉스 시계의 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뛰었다.

LG 선수들이 13일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LG 선수들이 13일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LG 구단 금고 속에 잠들어 있던 이 시계가 26년 만에 진짜 주인을 찾았다. LG 주장이자 주전 유격수인 오지환(33)이다. 오지환은 3차전에서 9회 역전 결승 3점포를 터트리는 등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3홈런 8타점으로 맹활약해 시리즈 MVP로 선정됐다. 기자단 MVP 투표에서 총 93표 중 80표(86%)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2009년 LG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오지환은 2029년까지 LG와 장기 계약을 한 '원 클럽 맨'이다. 한국시리즈 하루 전 미디어데이에서 "무조건 내가 롤렉스 시계를 갖겠다. 주장 직권으로 다른 선수를 지명하라고 해도 '나'에게 주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LG 구단의 역사와 전통이 서린, 하나밖에 없는 '우승 유산'을 품에 안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는 결국 각오 이상의 활약으로 LG의 역대 두 번째(김용수가 2회 수상)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동료들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LG 선수들이 13일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LG 선수들이 13일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스1

구 선대회장은 야구 사랑이 남달랐다. 럭키금성 시절이던 1990년 거액을 들여 MBC 청룡 야구단 인수에 앞장섰다. 새 야구단의 이름은 'LG 트윈스'라고 지었다. 럭키의 영문 이니셜 'L'과 금성의 영문 이니셜 'G'를 합친 이름이었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는 초대 구단주인 구 선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첫해부터 통합 우승을 일궜다. 당대 최강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4연패 독주를 끝내고 서울 연고 팀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2승을 따낸 에이스 김용수가 MVP로 뽑혔고, 포수 김동수는 정규시즌 신인왕에 올랐다.

LG는 4년 뒤인 1994년 또 우승했다. '스타 군단' LG가 완벽한 투타 밸런스를 뽐내며 승승장구하자 전국에 '신바람 야구' 신드롬이 일었다. 그해 입단한 류지현-서용빈-김재현 신인 삼총사는 단숨에 구단의 간판스타가 됐다. 한국시리즈에선 김용수가 1승 2세이브를 올려 또 MVP로 선정됐다. 구 선대회장은 이듬해 아예 그룹명을 'LG'로 바꿔 버렸다.

LG 구단주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이 13일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뒤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뉴스1

LG 구단주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이 13일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된 뒤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뉴스1

그러나 그 후 LG가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까지는 29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인기와 실력을 빠르게 키워 단숨에 정상으로 질주한 LG는 이후 오랜 암흑기를 겪었다. 1997년과 1998년,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끝으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2003년부터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13년 정규시즌 2위로 발돋움하면서 반등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2015년 다시 9위로 처졌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는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도 매번 준플레이오프나 플레이오프에서 도전을 멈췄다.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도리어 선수들의 발목을 잡았다.

LG 선수들이 13일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우승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LG 선수들이 13일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우승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염경엽 감독과 새 출발 한 올해, LG는 전열을 재정비했다. 1994년 우승 때처럼, 개막 직후부터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 시즌 초반엔 SSG 랜더스·롯데 자이언츠 등과 '3강'을 이뤘지만, 달이 바뀌면서 경쟁 팀들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6월 27일 SSG를 꺾고 선두로 도약한 뒤엔 순위표 맨 윗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올스타 브레이크 직후 7연승을 달려 독주 체제까지 굳혔다. 강력한 불펜이 버티는 '지키는 야구'와 팀 타율·출루율·장타율 1위의 막강한 타선을 앞세워 순조롭게 정규시즌 우승을 해냈다.

21년 만에 치른 한국시리즈에서도 LG는 거침없었다. 2위 KT 위즈에 1차전을 내줬지만, 이후 2~5차전을 내리 이겼다. 2차전과 3차전 모두 경기 막판 역전 홈런으로 승부를 뒤집는 명승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5차전 9회 초 2사 후, LG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KT 마지막 타자 배정대를 2루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LG는 한국시리즈 4번째 승리를 확정하면서 그렇게 꿈에 그리던 정상에 올랐다. 유광점퍼를 입은 관중으로 가득찬 잠실구장은 환호와 함성으로 뒤덮였다. 29년간 LG를 짓누르던 우승의 한도 마침내 훌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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