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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

마지막 아웃소싱? 인요한 혁신위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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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1 이제는 식상할 때도 되었건만, 선거철이면 나타나는 기구들이 다시 돌아왔다. 혁신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 매년 수백억원의 세금 지원을 받는 공적 기관이지만 스스로 뭘 해볼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게 우리 정당들이다 보니, 선거철이면 아웃소싱된 혁신위가 무대의 주연이 된다.

종교인, 법조인, 정치인 등이 주로 등판하던 아웃소싱 정치에 이번에는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 등장했다. 건장한 체격에 남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귀화 한국인. 게다가 이 땅에서 수대에 걸쳐 봉사를 펼쳐온 집안이라는 배경에 말솜씨까지 더해지니,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요즘 여당의 뉴스메이커로 떠오를 만 하다.

정당 무기력이 아웃소싱 불러와
당내 기득권 세력 압박에는 성공
근본적 변화 이루기는 쉽지 않아
궁극적 성패는 윤 대통령에 달려

#2 당장의 관심은 인요한 위원장의 광폭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이준석 전 대표 끌어안기는 성공할까?), 당 안팎의 관심을 얼마나 끌고 갈지에 쏠리고 있다. 이 같은 예측은 필자의 몫은 아니다. 오늘 칼럼에서는 한발 물러서서 좀 더 구조적인 이슈들을 짚어보려 한다. 아웃소싱 현상의 뿌리, 아웃소싱 정치가 안고 있는 지속가능성의 문제, 여당의 궁극의 리더로서의 윤석열 대통령의 과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3 먼저 아웃소싱 정치가 선거철 단골 메뉴로 자리 잡은 배경부터 따져보자. 정치학자들 표현을 따르자면 정당들이 인물과 정책을 아웃소싱하는 현상의 뿌리는 정당 카르텔 체제에 있다. 그들만의 아늑한 담합체제에서 안주하다 보니 정당들은 인물도, 생각도 늘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 결국 고인 물의 악취를 가리고 잠시나마 새롭게 단장해 보려는 제스처가 곧 아웃소싱 정치이다.

여러 번 나온 이야기이지만, 지난 30여년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정당사는 두 정당의 오랜 독과점의 역사이다. 철마다 당의 이름을 바꾸고 국민 앞에 무릎 꿇고 호소하고 천막 당사를 치고는 했지만 변치 않는 본질은 양대 세력의 독과점이다. 세계적인 기업가도, 시민운동가도, 벤처투자가도 양대 세력의 아성을 허물지 못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금태섭-양향자 신당, 이준석 신당 등 여러 움직임이 꿈틀거리지만, 이들이 마주하는 첫째 관문은 양대 정당들이 쳐놓은 진입 장벽이다. 정당법 17·18조는 모든 정당이 중앙당 이외에 다섯 개 이상의 시도 당을 유지해야 하며 각 시도 당에는 1000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결국 전국적인 네트워크와 엄청난 돈이 없다면 정당정치에 진입할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 기성 정당 담합체제의 본 모습이다.

경쟁 없는 담합 체제는 반드시 곪게 마련이다. 스스로 변할 수 없으니 외부 인물을 모셔와 새 단장을 하고 골치 아픈 이슈들을 떠넘기는 것이 담합체제 정당들이 살아온 방법이다.

#4 요즘 상당한 바람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인요한 위원장은 권력의 삼각지대 안에 외롭게 갇혀 있다. 권력 삼각형은 ①국민의힘의 변화를 바라는 지지자들의 기대 ②선거철 쇄신 바람을 일단 모면하고 보자는 당내 기득권 세력 ③그리고 여당의 궁극의 리더, 윤 대통령으로 이뤄져 있다. 이 삼자가 각자의 방향으로 팽팽히 잡아당기는 원심력 삼각형 안에 서 있는 것이 인요한 혁신위의 위태로운 위상이다.

요즘 혁신위의 초점은 삼각형 1변(지지자들의 변화 기대)을 동력으로 삼아 삼각형 2변(당내 기득 세력)을 압박하는 데에 맞춰져 있다. 편하게 경력을 쌓아온 기득권 중진들의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 비례대표에 청년후보들의 우선 배치 방안 등은 1변과 2변의 힘겨루기의 결과들이다.

#5 삼각형 1변, 2변과의 줄다리기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는 인요한 혁신위와 윤 대통령의 관계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윤 대통령은 스스로가 아웃소싱 정치를 몸소 체험해 본 경험이 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하던 검찰총장이 홀연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나서고 곧이어 대통령직에 올랐던 길은 바로 아웃소싱 정치의 길이었다.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의 고질적인 문제들, 폐쇄적이고 무기력한 현실들을 충분히 경험하였을 터이다.

경험과 기억이 바탕이 된다면, 윤 대통령의 이해와 지원은 인요한 혁신위가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당의 체질 변화를 추구하는 데에 원군이 될 수 있다. 근본적 변화의 예를 들자면, 소란스러운 중진 용퇴론보다는 지역구 의원 연임 제한의 제도화(최대 3선),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라는 얄궂은 제스처보다는 의원 소환제의 전면 도입 등이다.

혁신위가 삼각형 1변과 3변의 지지를 모두 끌어모을 때 비로소 우리는 여당에 대해 무언가 실질적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실은 윤 대통령에게도 절실하다. 개인화된 통제→통제의 약화→여당의 반란이라는 과정을 반복해온 대통령-여당 관계가 변화하려면 윤 대통령도, 여당도 아울러 변해야만 한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