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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여당이 앞장서는 포퓰리즘 정책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4호 30면

여권, 내년 총선 앞두고 인기영합 정책 쏟아내

대출 상환수수료 면제에 횡재세 카드 만지작

기업 때리기로 선거서 재미 볼 생각은 말아야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칼은 대통령실과 여당인 국민의힘이 먼저 빼 들었다. 김포시의 서울 편입 추진에 이어 전격적인 공매도 전면 금지 등을 발표했다. 이런 정책이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대출 중도상환수수료 한시 면제 등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는 조처도 쏟아내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이나 시장 왜곡을 바로잡는 전기료 인상 등 당장 시급한 경제 정책은 미루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통을 수반하는 개혁에는 손을 놓은 채 재정 풀기에 몰두했던 전임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국무회의에서 “은행 종노릇” 발언에 이어 지난 1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도 “갑질” 같은 단어를 동원해 은행 때리기를 이어갔다. 그러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유시장 경제 근간을 침해할 수도 있는 ‘횡재세’ 도입을 들고 나왔다.

민주당은 지난 8일 토론회를 열어 “특정 업종이 아무런 노력 없이 과도한 불로소득을 누리는 것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정책적 조치”(이개호 정책위의장)라며 횡재세 도입을 위한 법 제·개정 의사를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횡재세 도입 추진 방침을 거론했다. 민주당은 이미 올 초 정유업계 등을 타깃으로 횡재세 카드를 꺼내든 바 있다. 지난 4월에는 같은 당 민병덕 의원이 이와 관련한 서민금융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당시엔 국민의힘이 부정적이라 횡재세 도입의 추진 동력이 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앉아서 돈 벌고 그 안에서 출세하는 너무 강한 기득권층”이라는 원색적 표현까지 써가며 은행권 전체를 죄악시하자 야당은 물론 이에 부정적이던 금융당국까지 횡재세 도입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은행 초과이익 환수에 대해) 어떤 방법이 좋을지 우리나라 특성에 맞춰 종합적으로 계속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은행 이익과 관련한 국민 고통을 인지하고 있다”며 “각국 정책들을 눈여겨보는 상황”이라고 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은행권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국내 은행들은 겉으로는 늘 “정부 규제 탓에 어렵다”고 푸념하지만, 실제로는 정부 보호 아래 과점의 지위를 톡톡히 누리며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 고금리 기조 속에서 예대 마진이 커지면서 ‘땅 짚고 헤엄치기’식의 손쉬운 돈벌이를 해왔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서민들은 고금리로 대출이자 갚느라 허리가 휘어지는데, 고통분담은커녕 연봉 인상, 성과급 나눠 먹기, 퇴직금 잔치로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렇다고 은행을 악마화해 정부가 과도한 개입을 하는 건 결코 좋은 해법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최근의 예대 마진 확대는 정부의 정책 실패 탓도 크다. 집값 경착륙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정책금융을 대거 풀면서 잡아야 할 가계대출을 오히려 부채질해오지 않았나. 인제 와서 민생을 위해 이자율 낮추라고 은행을 윽박지르니, 이런 모순이 없다. 이자율을 낮추면서 대출을 줄이는 방법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반성 대신 은행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표를 얻겠다고 나서니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은 야당과는 달라야 한다. 민생은 챙기되 시장경제 원칙은 거스르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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