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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14억 중국 인구는 고구마 덕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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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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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면 베이징 거리에도 군고구마(烤紅薯) 장수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중국에서도 예전 군고구마는 서민들의 인기 간식인데 심지어 청나라 황제도 즐겨 먹었다고 한다. 건륭황제가 그 주인공이다.

89살까지 장수하며 청나라 전성기를 이끈 건륭은 변비가 심했다. 어느 날 궁궐 주방을 지날 때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자 어떤 음식인지 물었다. 환관이 군고구마 냄새라고 하자 가져오라고 해 맛을 본 건륭이 맛이 좋았는지 가끔 간식으로 먹었다. 덕분에 변비가 사라지고 정신까지 맑아졌다. 효과를 본 황제가 “인삼보다 더 좋다”고 칭찬했는데 이 말이 민간에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고구마를 땅에서 나는 인삼(土人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예전 중국 할머니들이 손주들에게 고구마 구워주며 들려주었음 직한 이야기다. 그런데 왜 하필 하늘 같은 건륭황제를 들먹이며 한갓 고구마를 귀하기 그지없었던 인삼에 비유했던 것일까?

시중 잡설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생긴 데는 나름대로 배경이 있다. 건륭황제 때 대기근이 들었는데 황제가 고구마를 구황작물로 보급한 덕분에 많은 사람이 굶주림에서 벗어나 살아남았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18~19세기 중국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데 고구마가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중국 인구가 지금의 14억으로 늘어나는데 고구마가 촉매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설마 싶지만 고구마가 대기근 때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것은 분명하다. 18세기 중후반 중국은 산둥(山東) 성을 중심으로 여러 성에서 연이어 심각한 기상재해를 겪었다. 건륭 11년인 1746년, 황허의 범람으로 산둥 성에 엄청난 홍수피해가 발생했다. 이듬해에는 반대로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5월까지 비한 방울 내리지 않다가 6월에는 때아닌 서리가 내려 땅에 심은 종자까지 몽땅 얼어 죽었다. 건륭 13년에는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메뚜기 떼가 기승을 부리며 풀뿌리까지 먹어 치웠다. 이렇게 10년 중에서 9년간 각종 재난에 시달렸다.

산둥 성이 피해가 제일 심했지만, 허베이(河北)와 허난(河南)을 비롯해 여러 성에서 자연재해가 두루 발생하면서 중국이 몸살을 앓았다. 아사자가 속출했고 굶주리다 못해 아이를 팔아 열흘을 먹고, 마누라를 팔아 닷새를 견디다 급기야는 자신을 종으로 팔아 하루를 연명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청나라를 구한 것이 고구마였다. 남미의 고구마는 스페인과 필리핀을 거쳐 명나라 말인 1593년 중국에 전해졌다.

천쩐룽(陳振龍)이라는 푸젠 상인이 지금의 필리핀 루손 섬인 여송국(呂宋國)에서 마처럼 생긴 낯선 작물을 발견했다. 종자 반출을 엄격히 금지했기에 고려 때 문익점이 붓뚜껑에 목화씨를 숨겨 들어온 것처럼 천쩐룽도 고구마 줄기로 새끼줄을 꼬아 종자를 가져왔다.

하지만 품종개량이 이뤄지기 전의 고구마는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작물이었기에 푸젠(福建) 성 등 중국 남부에서만 재배됐고 화북지방에는 퍼지지 못했다. 그러다 18세기의 자연재해를 계기로 적극적인 종자 개량이 이뤄지면서 건륭 21년 마침내 베이징 인근 퉁저우(通州)에서 재배에 성공했다.

이후 건륭은 고구마 전파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고구마는 흉년에 양식을 대신하는 구황작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 결과 심각한 자연재해가 발생해도 굶어 죽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고구마가 중국 인구증가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통계를 봐도 알 수 있다. 명청시대 중국 인구는 연구논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5세기 초, 명나라 영락제 때는 대략 6700만 명으로 추산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1억 명 내외로 보는 경우도 있다. 250년이 지난 명나라 말에도 인구는 크게 늘지 않았다. 대규모 전란으로 인구가 정체됐다.

이랬던 중국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다. 청나라 초기 강희제 때도 1억 명 남짓했던 인구가 대기근을 겪고 난 후인 건륭 27년(1762년)에는 2억 명, 그 후 약 30년이 지난 건륭 55년(1790년)에는 3억 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인 도광제 14년(1851년)에는 4억 3000만 명이 됐다.

이런 인구증가 과정에서 고구마가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고구마를 땅에서 나는 인삼, 건륭황제가 고구마를 좋아했다는 속설이 생겨난 배경이다.

물론 폭발적 인구증가의 원인을 고구마에서만 찾는 것은 무리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는데 고구마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은 틀림없다.

인구증가의 첫째 요인으로는 일단 청나라 초 삼번의 난 이후 태평천국의 난까지 170년 동안 별다른 전쟁이나 내란이 없었던 것을 꼽는다. 덕분에 무기에 쓸 쇠로 농기구를 제작하는 한편 황무지 개간 등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작물 수확이 늘었다.

동시에 18세기에 중남미 작물인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땅콩 등이 중국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 중에서도 고구마가 일등 공신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18세기 유럽의 식량난을 해결한 것은 남미에서 전해진 감자였다. 비슷한 시기, 남미 작물인 고구마 덕분에 중국도 굶주림에서 벗어났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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