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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메가 서울’ 긴급좌담

오사카·교토 ‘간사이 연합’처럼 지방 메가시티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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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메가시티 서울은 침체된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총선용 표심을 노린 ‘대국민 사기극’(김동연 경기도지사)으로 끝날까. 여당이 ‘뉴시티 프로젝트 특위’까지 만들어 특별법 입안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야당은 “선거를 노린 정치쇼”라며 시군구부터 읍면동까지 개편하는 전면적인 행정 대개혁을 내세웠다.

그러나 실행 가능한 구체적인 논의는 배제된 채 선거 구호만 난무하는 실정이다. 중앙일보는 효율적인 국토 이용과 지역균형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한표환 글로벌정책연구원장(전 지방행정연구원장),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사회는 윤석만 논설위원.

한표환 글로벌정책연구원장
행정권과 생활권 통합이 중요
도시 획정 유연하게 생각해야

마강래 중앙대 교수
서울 편입으로 문제 풀 수 없어
지자체 연합으로 경쟁력 키워야

서종국 인천대 교수
면적 넓힌다고 경쟁력 안 커져
전국 60~70개 광역시로 개편을

생활권과 행정권의 불일치가 문제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메가 서울’ 구상을 어떻게 보나.

▶서종국 교수=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냥 선거용이다. 김포가 서울이 되면, 구리·과천·광명·남양주 등 인접한 도시들도 연달아 편입을 주장할 거다. 그러면 서울이 어디까지 커져야 하나. 도시 면적 넓히는 걸 메가시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본질은 인접한 도시 간의 기능적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다. 단순히 서울 면적이 넓어진다고 도시 경쟁력이 커지는 건 아니다.

▶한표환 원장=도시가 발전하며 행정권역과 생활권역의 불일치가 심화했다. 김포만 해도 서울 출퇴근자들이 많아 생활의 편의성을 떨어뜨린다. 행정권역은 임의로 선을 그은 것뿐이어서 언제든 바꿀 수 있다. 행정체계 개편 논의가 많았지만, 선거구 획정 등 정치권의 이해관계 탓에 이뤄지지 않았다. 김포처럼 생활권과 행정권을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서울 인접 지역의 경우, 가까운 서울 학교를 놔두고 멀리 떨어진 자기 도시 학교로 다녀야 하는 학생들도 많다.

▶한=유기적인 통합이 필요한 이유다. 기계적으로 도시 전체를 서울에 편입시킬 필요는 없다. 생활권이 서울에 가깝고 소속 도시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행정구역상 서울인 게 맞는다. 다만 주민들의 의사와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하다. 2010년 마산·창원·진해를 통합한 창원시는 오랜 시간 주민들의 논의를 거쳐 결정됐다. 통합 모범 사례인 창원시는 특례시로 승격됐다.

지자체 자율성 키우는 행정 필요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생활권·행정권 불일치는 서울 주변 도시들의 공통 문제 아닌가.

▶마강래 교수=그렇다. 김포가 먼저 표면화됐을 뿐, 다른 지역에서도 언제든 터질만한 사안이었다.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마다 1~3기 신도시를 발표했다. 생활권은 공유했지만, 교통 등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못해 불편을 낳았다. 이 문제를 모두 서울 편입으로 해결하면 서울시민들에게 유리한 지역만 선택받고 경기도엔 낙후지역만 남을 거다.

▶서=서울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들은 반대한다. 도봉·중랑구 등은 지리적으로 서울 끝부분에 있고, 서울이라는 울타리의 혜택을 크게 보지 못한 곳이다. 이곳 주민들이 인근 지역의 서울 편입을 환영할까. 서울을 키우기보다 지자체 스스로 자립·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병원·학교 등 서울에 오지 않고도 자체 생활권을 유지할 수 있게 균형발전해야 한다.

지역 경쟁력을 키울 방법은.

▶마=2010년 일본에선 오사카가 중심이 돼 간사이(關西) 지역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교토·나라·돗토리 등 인근 지자체들이 뭉쳐 ‘간사이 연합’을 만들었다. 8개 광역 지자체가 모여 산업발전, 환경보전, 관광·문화·스포츠, 자격시험·면허 등 7개 사무를 협력한다. 일본에서도 수도권 유출 문제가 심각했지만, 지자체들이 공동 대응하며 지역 경쟁력을 키웠다. 자체적으로 의사결정 기구를 만들고, 각자의 역할을 나눠 시너지를 냈다. 산업·교통 등 거시적 협력을 통해 지역 발전을 견인한다.

(‘간사이 연합’의 출범 후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비자청 신미래창조전략본부(도쿠시마현), 총무성 통계활용센터(와카야마현) 등 정부 기관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고, 2025년엔 오사카·간사이 박람회를 공동으로 개최한다. 인구 2181만 명의 ‘간사이 연합’은 일본 GDP의 17%를 차지하며, 2040년 25%를 목표로 하고 있다.)

거시적 차원의 도시계획 수립해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행정체제 개편 주장도 나온다.

▶서=광역과 기초의 복층 구조로 돼 있는 지방행정 체계를 단층 구조로 바꿔야 한다. 2005년 국회에서 여야가 논의했던 것처럼 도를 없애고 전국을 60~70개의 광역시로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 같은 기초지자체인 충북 청주시(85만 명)와 경북 영양군(1만5000명)의 인구는 57배 차다. 인접 시군구를 묶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자율성을 강화해 자립시켜야 한다.

▶마=전면적 행정구역 개편보다는 기존 지자체의 광역 조율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김포도 원래는 인천 생활권이었는데, 집값 폭등 후 서울시민들이 이주하며 문제가 생겼다.  서울·경기의 대중교통 문제가 원활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것도 이런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광역 조율 기능이 있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사안이다. 수도권을 특별지자체 형태로 묶어 거시적 차원의 도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한=현행법상 지자체 간의 합의만 있으면 특별지자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 거버넌스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서울·인천·경기를 특별지자체로 만들면 그 장은 어떻게 뽑을 것인가. 별도로 선출할 수도 있고, 돌아가며 맡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옥상옥이 될 게 뻔하다. 한국처럼 2개의 정당으로 양분된 나라에선 지역 이슈보다 정치 이슈가 우선될 가능성도 크다.

(지방자치법 199~211조에 따르면 특별지자체는 독립된 장과 의회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지자체의 의회는 참여하는 지자체 의회의 의원으로 구성한다고만 돼 있을 뿐 그 장과 함께 구체적인 선출 방법은 명시해 놓지 않았다.)

▶마=‘간사이 연합’도 일종의 특별지자체 형식이다. 특별지자체에 모든 권한을 주는 게 아니라 교통·환경 등 광역 조율이 필요한 업무로만 기능을 제한하면 권한의 비대화를 막고, 꼭 필요한 광역 조율 기능을 살릴 수 있다.

지역균형 메가시티 전략 세워야

여당 내부에서도 ‘메가 서울’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미 메가시티인 서울을 더 비대화시키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홍준표 대구시장)이라거나 “서울을 더 ‘메가’ 하게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 경쟁력을 갉아먹는 짓”(서병수 의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포와 경계가 맞닿은 인천의 유정복 시장은 “실현 불가능한 얘기로 김포시민에겐 실망만 초래하고, (전 국민에겐) 비호감만 키운다”고 비판했다.

합리적 메가시티 전략은 무엇일까.

▶한=김포의 서울 편입은 지지부진했던 행정구역 개편 논의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부산·울산·경남과 광주·전남 등 지방의 메가시티 추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한다. 국토관리청 등 시도 업무와 중복인 중앙정부 권한을 광역 메가시티에 주고 알아서 결정케 해야 한다. 분권·자립이 절실하다.

▶마=한국의 큰 문제인 저출산과 높은 집값도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관련 있다. 지자체 간 협력구조를 만들어 함께 산업을 키우고 광역 교통망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행정구역 편입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과거엔 지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 인하 등 금전적 혜택을 줬지만, IT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재가 중요해졌다. 교육과 산업이 함께 선순환할 수 있는 메가시티를 만들어야 한다.

영국에선 런던 집중이 심각해 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브렉시트 전후 영국이 계속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수도권에 과도한 집중이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지방이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마련돼 있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국가발전이 어렵다.

(지난 8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영국은 미시시피만큼 가난한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국의 1인당 GDP(4만5850달러)가 런던을 제외하면 14%나 떨어진다고 했다. 4만 달러가 채 되지 않아 미국의 가장 낮은 주인 미시시피와 비슷한 수준이다. 런던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6만9540달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