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위자료” 제조사 책임 첫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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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을 사용한 3등급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 위자료를 인정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가습기살균제 관련 손해배상 소송 중 대법원의 결론이 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9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A씨가 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와 제조사인 한빛화학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를 기각했다. 두 회사가 공동으로 A씨에게 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한 원심이 그대로 확정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제조사 민사 배상책임소송 법원 판단

가습기살균제 제조사 민사 배상책임소송 법원 판단

A씨는 2007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해마다 겨울~봄이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성분이 들어간 옥시의 가습기살균제였다. 매년 11월 즈음부터 이듬해 4월까지 연중 약 6개월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던 중 기침 등 증상이 발생해 2010년 5월부터 병원 치료를 받았고, 2013년 5월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았다.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조사를 시작한 뒤, A씨는 2014년 ‘3등급’ 판정을 받았다. 당시 정부의 판정 등급은 가능성 거의 확실함(1등급), 가능성 높음(2등급), 가능성 낮음(3등급), 가능성 거의 없음(4등급), 판단 불가능으로 분류됐다. 3등급은 가습기살균제 노출 피해자 중에서 ▶가습기살균제 노출에 해당하고 ▶그로 인한 폐질환 발생 과정도 의심이 가능해 ▶가습기살균제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으나 특징적인 병의 양상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 부여되는 등급이다. A씨는 최초 1, 2등급 피해자에게만 지원했던 질병관리본부 지원금은 받지 못했지만, 그와 별개로 생긴 특별구제계정 지원대상자로 분류돼 2018년부터 월 97만원을 받게 됐다. 특별구제계정은 ▶노출과 건강피해 의학적 개연성이 있고 ▶시간적 선후 관계가 인정되며 ▶건강피해가 중증이거나 지속할 경우 지원금을 지급한다.

다만 이후 2017년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으로 3등급도 지원금 지급 대상에 포함됐고, 2019년 A씨는 환경부 환경노출조사 결과 ‘노출확인자에 해당한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A씨는 2015년 옥시레킷벤키저와 제조·납품사인 한빛화학을 상대로 2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선 기각됐다. 그러나 2019년 수원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두 회사가 공동으로 A씨에게 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가습기살균제의 설계상 결함과 그로 인한 손해 발생까지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제품에 하자가 추단되고, 정상적으로 사용했는데도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까지만 일반 소비자가 증명하면 된다” “제조업자가 다른 원인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하자로 인한 손해 발생을 추정할 수 있다” 등의 판례 법리를 인용했다. 또 ‘살균 99%, 아이에게도 안심’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등 문구를 표시한 데 대해 “사용자들은 제품의 안정성이나 유해성 등을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워, 전적으로 피고들이 제시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용기에 기재된 표시를 믿을 수밖에 없다”며 제조물책임법상 표시상 결함도 인정했다.

대법원은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를 추단한 원심의 결론이 타당하다고 판단했고, 위자료 액수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그로 인한 질환의 발생·악화 인과관계 판단은, 질병관리본부 판정과 별개로 원고 측의 구체적인 증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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