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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 다니던 아버지 보고 나눔 배워”…14억 기부한 한의사 ‘국민포장’

중앙일보

입력

‘202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한 박순호씨(왼쪽부터), 국민포장을 받은 이승호씨, 김인석씨. 사진 보건복지부

‘202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한 박순호씨(왼쪽부터), 국민포장을 받은 이승호씨, 김인석씨. 사진 보건복지부

“제가 환자를 보고 돈 벌 때보다 여러 사람과 나눌 때 진짜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아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정도의 큰 기쁨이 있기 때문에 진짜 중독입니다, 중독. (웃음)”

대전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며 30여년간 무료진료 등 의료 나눔을 지속해온 이승호(59) 경북한의원 원장의 말이다. 대전 지역사회에서는 이미 각종 나눔 활동으로 유명한 이 원장은 9일 개최된 ‘제12회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시상식에서 국민훈장에 다음가는 국민포장(褒章)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을 묻자 “어떤 상인지 잘 몰라서...”라며 머쓱하게 웃은 그는 “앞으로 좋은 일 더 많이 하라고 주신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1993년부터 독거노인과 같은 어려운 이웃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한약을 지원한 것을 비롯해 경로당·사회복지시설에 유류비·난방물품 등을 기부해왔다. 어버이날 경로잔치, 지역주민을 위한 나눔 축제한마당 개최, 평생학습 건강 강좌 개설 등 각종 사회공헌 활동도 도맡았다. 그가 지금까지 주변에 나눈 기부금만 총 14억4600만원에 달한다.

4대째 한의사 집안, 대물림 되는 나눔

이 원장의 이런 나눔 습관은 4대째 한의사 집안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이다. 그는 “아버지께서 중풍 환자들을 보러 왕진을 자주 다니셨는데, 부엌에 쌀이나 연탄이 떨어져있으면 나중에 약을 보낼 때 쌀이랑 연탄도 같이 몰래 배달하시곤 했다”며 “어릴 때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서인지 이웃과 나누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원장처럼, 꼬마 때부터 아빠를 따라 복지원 등을 다닌 이 원장의 아들도 벌써 대전 아너 소사이어티(고액 개인 기부자 모임) 회원일 정도로 온 가족이 나눔에 ‘진심’이다. 한의사라는 직업뿐 아니라 나눔 습관도 대물림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때는 치료에 효과 있는 한약 처방을 찾아내 무료로 공급하는 등 한의사로서 할 수 있는 봉사를 주로 하지만, 이 원장은 치료 외에도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늘 궁리하며 지낸다. 특히 중학생에게 맞춤 교복을 지원하던 봉사는 그가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일이지만, 국가의 무상교복 지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늙어죽을 때까지 하려고 했던 일인데, 제 기쁨을 나라에서 빼앗아갔지 뭐에요.”

농담을 섞은 말이었지만,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 원장은 “나눔도 하나의 일(job)이라서 내가 스스로 연구하지 않고, 남이 해달라고 하는 일을 하면 덜 행복하다”며 “나는 그저 내가 행복해서 나누는 거다. 앞으로 목표라면 그저 능력이 될 때까지 꾸준히 나누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332억 기부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에 ‘국민훈장’

나눔국민대상은 이 원장과 같이 일상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을 발굴·포상해 나눔 문화를 확산하고자 마련된 행사로, 보건복지부·KBS·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공동 주최한다. 올해도 국민 공모와 나눔단체 등의 추천을 거쳐 자원봉사·기부·후원 등의 분야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한 국민 135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올해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자에는 40여년간 사회복지시설 등에 총 332억원을 기부한 박순호(77) 세정그룹 회장이 선정됐다. 주식회사 아이에스의 대표 김인석(66)씨는 자녀의 결혼식 축의금과 배우자의 작품 전시회 수익금 등 25년간 10억3000만원을 기부하고 정기 후원 등 나눔을 실천해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이밖에 단칸방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면서도 28년간 노인정·중증장애인시설 등에서 음식 나눔봉사를 한 김포우체국 소속 지보현(64)씨, 2012년부터 중학생 9만2000여명에게 멘토링 등으로 학습 기회를 제공한 삼성복지재단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취미와 기부를 결합한 기부 캠페인을 기획해 시민들의 기부 참여를 독려한 배우 박시은·진태현 부부와, 충북 음성 꽃동네 등 지역사회에 지속적으로 나눔을 실천해온 전정숭(70)씨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지 않게 주위에 온기를 더하고 계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보듬을 수 있는 일상 속 나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정부도 나눔을 실천하신 분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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