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오빠를 대신해 남장하고 왕실 서기로 살아가는 설자은이 ‘셜록 홈스’라면, 일찌감치 그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백제 출신 장인 목인곤은 ‘존 왓슨’이다. 우연히 같은 배를 타게 된 둘은 콤비가 돼 홈스와 왓슨처럼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간다. 지난달 30일 출간된 소설가 정세랑(39·사진)의 역사 미스터리 장편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문학동네)의 얼개다.
학원 판타지물 『보건교사 안은영』, 새로운 가족상을 제시한 『시선으로부터』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정세랑이 3년 만에 낸 신작이다. 출간 전 예약 판매만으로 지난달 교보문고 한국소설 1위에 올랐다. 서기 680년 통일신라 수도 금성이 배경이다. 정씨를 지난 6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 판타지부터 리얼리즘 소설, 역사 추리물까지 포트폴리오가 다양하다.
- “동시대인들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 거침없이 읽을 수 있는 오락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 다 갖고 있다. 이번엔 후자의 마음으로 썼다. ‘어떻게 쓰면 웃길까’ ‘어떻게 쓰면 내달리듯 읽힐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 하필 통일신라가 배경인가.
- “사료가 많으면 작가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다. 통일신라 시대는 자료가 적고 그나마도 축약된 것이 대부분이라 상상력으로 채워나갈 수 있어 재밌었다.”
- 직접 답사도 했나.
- “2016년 경주에 수도 없이 갔다. 해 질 무렵에 월지(月池)를 갔는데, 왕이 연회를 벌이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매잡이 시체가 연못에서 발견되는 에피소드도 여기서 나왔다.”
- 전공이 도움 됐나. (※정세랑은 고려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 “어디를 뒤져야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아꼈는데, 전공 덕이다. 사실을 다루는 학문과 융화할 수 없어서 (웃음) 창작자가 된 거다.”
- 주인공이 6두품 남장 여자라는 설정이 진부하다는 독자도 있지 않을까.
- “‘남장 여자’라는 클리셰라도 있어야 1300년 전 세계로 들어가는 게 수월하지 않겠나. 역사물·추리물이 많은 사람에게 가 닿기 위해서는 통속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설자은과 목인곤을 콤비로 만든 이유는.
- “둘의 관계를 최대한 매력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우정이지만 때로 건조하고 미묘한 관계라고 할까.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남녀 주인공이 한 명씩 나오는 게 더 재밌지 않나.”
-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은 술술 읽히다가도 멈칫하고 ‘사람 본성이 그렇게 뒤틀린 데가 있지’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98%는 즐겁고, 2%는 가시처럼 찌르는 까끌까끌함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