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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은 범퍼카 타면 안 된다? 法 “차별” 5년만에 2심 결론

중앙일보

입력

지난 2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탑승객 무게와 똑같은 더미(Dummy)를 태운 놀이기구 티익스프레스의 시운전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지난 2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탑승객 무게와 똑같은 더미(Dummy)를 태운 놀이기구 티익스프레스의 시운전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시각장애인들이 “장애를 이유로 놀이기구 탑승을 제한하는 건 차별”이라며 에버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이겼다. 서울고등법원 민사합의19-3부(배용준·황승태·김유경 고법판사)는 8일 시각장애인 김준형 씨 등이 에버랜드 운영사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삼성물산 측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에 김씨 등에게 인당 20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고, 놀이기구 안전 가이드북에서 범퍼카와 T익스프레스 등 7개 기구의 시각 장애인의 이용을 제한한다는 항목을 60일 이내에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김씨 등은 앞서 2015년 에버랜드에 갔지만 일부 놀이기구 입장이 제한되자 “차별”이라며 725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에버랜드는 “빠른 속도, 회전, 충돌 등을 동반한 놀이기구 및 탑승객이 직접 운전, 조정을 하는 시설은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정상적인 시력과 판단능력이 필요하다”는 가이드북 논리에 따라 시각장애인의 일부 놀이기구 탑승을 금지해 왔다. 법정에서 에버랜드 측은  “승·하차 과정 또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위험성이 커지는 점을 고려해 탑승을 제한한 것”이라며 “눈이 안 보이면 놀이기구 탑승 시 부딪칠 수 있어 부상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2018년 8월, 1심 재판부는 에버랜드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접 에버랜드를 방문해 현장을 검증하기도 했던 1심 재판부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위험 정도에 있어 별 차이가 없고,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용이 부적합하다거나 본인 또는 타인의 안전을 저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놀이기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못 박았다. 2심 재판부도 1심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봤다.

이번 2심 판단은 소 제기 8년만, 1심 선고 후 5년이 지나서야 나왔다. 에버랜드 측이 요청한 시각장애인의 놀이기구 접근에 대한 안전 검증 재평가와 재판부 재배당, 조정 회부 및 결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이 겹치면서 재판은 수년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8일 항소심 선고가 끝난 후 시각장애인들과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병준 기자

8일 항소심 선고가 끝난 후 시각장애인들과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병준 기자

시각장애인들은 선고가 끝난 뒤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리를 자축했다. 김씨 등의 변호를 맡은 김재왕 변호사는 “이 재판은 ‘왠지 위험할 거 같다’는 사업주의 막연한 추측으로 ‘놀이기구 탑승이 안 된다’고 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법원이 단순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론 이용을 막아선 안 된다고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도 “비장애인에게 제한되지 않는 ‘위험을 선택할 권리’를 장애를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행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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