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싸고 새 불씨|해고 다투는 노조원 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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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해고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노동자의 조합원자격 유무문제를 놓고 노동부와 노동계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특히 지난달 2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해고효력을 다투는 노동자가 쟁의행위에 가담했을 경우 제3자 개입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 노동부가 『해고효력을 다투는 자는 근로자 또는 노조원의 자격을 가질 수 없다』는 기존입장을 고수해 이 문 제가 노사갈등의 또 다른 불씨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 판결을 「법원이 해고다툼중인자의 근로자자격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는 노동계는 벌써부터 일부 사업장에서 해고 근로자가 구제신청을 낸 뒤 조합원자격을 주장하고 나서 회사측과 마찰을 빚는가 하면 서울지하철노조는 해고근로자를 노조대표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며 총파업까지 선언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7일 대법 판결과 관련한 업무지침을 전국 노동관서에 서둘러 시달,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으며 상황에 따라 시비는 다시 법정으로까지 옮겨갈 전망이다.
해고다툼 근로자의 조합원자격 유무를 둘러싼 노동부와 노동계·학계의 입장과 분쟁현장을 종합점검 해본다.
◇노동부입장=법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을 빚고있는 부분은 이번 대법 판결의 근거가 된 노동조합법 3조4호의 단서조항.
87년11월 개정된 현행 노동조합법 제3조4호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조항과 함께 「해고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자를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두고있다.
노동부는 법 개정이후 88년2월 각 시·도 및 노동관서에 시달한 「노동조합 업무처리지침」에서 이 조항의 해석·적용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 또는 소를 제출하여 계류 중 에 있는 자는 그 다툼이 끝날 때까지 조합원으로서의 신분이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되며 조합원 또는 조합 임직원으로서의 지위에 대해서는 조합규약에 따른다』고 밝혀 사실상 해고효력다툼이 있는 근로자의 조합원신분을 인정하는 혹으로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각 사업장에서 이 문제로 노사간 갈등이 빚어지자 지난해 11월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자는 근로자나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노동조합 업무지침 보완」이란 공문을 각 시·도에 시달, 이전과 정반대의 유권해석을 내렸다.
노동부는 3조4호의 단서조항은 노조의 설립 또는 존속을 저지하기 위해 사용자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를 해고함으로써 노조 자체를 불법화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노동조합보호규정이지 조합원개별신변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므로 해고로 인해 사용·종속관계가 단절된 노동자는 당연히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쟁의행위에 개입 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조합원의 자격을 갖고 노조위원장 등 임원으로 선출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이번 대법 판결을 확대 해석한데서 나온 논리라는 주장이다.
구연춘 노정국장은 『만약 해고효력을 다투는 노동자의 조합원신분을 인정하게되면 해고자가 해고의 정당성 여부에 관계없이 부당 해고 구제신청이나 해고무효확인소송 등을 제기하고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2∼3년간 노조대표자나 단체교섭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어 합리적인 교섭타결이나 분규해결이 매우 어렵게 된다』며 그런 이유로 보완지침을 내렸고 노동부 입장은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동계=한국노총·전노협 등 노동계는 노동부의 이 같은 유권해석은 사용자의 부당 노동행위를 인정해주는 편파적인 법 해석이라고 반발하고있다.
노동계는 3조4호 단서조항은 과거에 사용자들이 노조위원장 등 간부들을 부당하게 해고해 노조활동을 마비시키는 사례가 많아 이를 막기 위한 보호규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때문에 설사 사용자로부터 해고되더라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조합원자격이 유지되어야한다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특히 노동부가 법 개정직 후인 88년 업무지침에서 당초 조합원자격을 인정했다가 이를 번복하는 등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해왔다고 비난하고 『이번 판결 또한 축소 해석해 대법원의 권위에 도전하고 노동운동을 탄압하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노협 심상호 쟁의부장은 『이번 대법 판결은 현재의 노동조합법이 제한된 보호법이나마 그 법 정신을 충실하게 해석한 것으로 본다』면서 당연히 해고다툼중인자의 근로자자격은 인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분쟁현장=해고근로자의 조합원자격을 둘러싸고 노사간 분쟁이 일고있는 대표적인 곳이 현대건설과 서울지하철 노조.
현대건설 해고근로자인 신모씨(30·여) 등 2명은 권고사직자인 임모씨(32·전 노조간부) 등 2명과 함께 대법원판결 직후인 지난달 29일 부당 해고 구제신청을 내고 『해고효력을 다투는 자는 근로자로 인정된다』고 주장, 이날부터 출근투쟁을 펴고있다.
서울지하철도 현 노조위원장인 해고근로자 정윤광씨(44)의 대표성을 회사측이 부정,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3월 노조위원장이던 정씨는 노동쟁의조정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된 후 실형을 받아 해고당한 후 지난달 22일 출소하자 조합원임을 주장, 다시 위원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정씨의 복역 중 실질적으로 노조를 이끌어온 5차례의 직무대행 체제는 물론 정씨의 대표성 인정을 거부해 지난2월 단체협약시효가 끝났음에도 아직까지 임금 및 단체협약교섭을 못하는 등 진통을 겪고있다.
노조 측은 10일 대의원총회를 갖고 현 집행부의 대표성을 공사 측이 계속 문제삼아 단체교섭을 거부할 경우 12월내 총파업도 불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밖에도 MBC노조와 부천대성병원 등 현재 전국 90개 사업장에서 2백여 명이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 해고무효판정을 신청해 회사측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특히 87년 이후 발생한 3천7백 여건의 노사분규로 인해 1천여 개 사업장에서 해고근로자가 발생한 상태여서 앞으로 분쟁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한편 숭실대 임종률 교수(노동법)는 『노동조합법 3조는 노동부 주장대로 노조보호규정임엔 틀림없다』면서 『그러나 노조활동을 하는 노조개인을 보호하지 않고 노조를 보호할 수 없고 이 조항은 노조설립부터 소멸될 때까지 적용되어야 하므로 해고다툼중인자의 근로자 자격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근로자 측 주장에 동의했다. <정순균 기자>

<대법원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배만운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된 전 충남택시운전사 오성근씨(33)에 대한 노동쟁의조정법 등 위반사건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날 판결에서 법관 13명중 5명은 소수반대 의견을 냈다.
◇판결이유=노동쟁의조정법 제13조2(제3자 개입금지)가 직접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근로자나 해당 노동조합·사용자 등을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쟁의행위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제45조2에 의해 위반자를 처벌하도록 한 취지는 노동쟁의가 노사당사자의 대등한 입장에서 자주·독립적으로 해결되게 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법의 취지로 볼 때 노동조합의 정의와 관련해 노동조합법 제3조 제4호 단서가 「해고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자를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만큼 피고인을 노동쟁의조정법이 금지하는 제3자로 볼 수 없다.
◇소수의견=쟁의행위가 노사당사자의 자주적인 노력으로 평화롭고 신속하게 해결되려면 노동쟁의조정법 제13조 2가 규정한 제3자의 범위는 법문에 명시된 대로 엄격히 해석돼야 한다.
사법상 해고효력을 다투는데 기한의 제한이 없는 현실에서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해고효력을 다툴 수 있어 해고효력만 다툰다고 근로자 지위를 인정, 제3자라고 할 수 없다면 쟁의행위의 신속한 해결을 바라는 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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