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컴맹도 쓴다"는 3만원짜리에 당했다…티켓 다 뺏긴 야구 팬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LG트윈스 팬인 회사원 김모(39·서울 용산구)씨는 지난 6일 오후 1시 59분, 한국시리즈 티켓 예매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2시 정각이 되자 김씨는 다급하게 ‘예매하기’ 버튼을 눌렀지만, 화면에는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떴다. 대기 순서는 9만 번. 가까스로 예매 가능 좌석을 찾아 클릭하자 “다른 고객님께서 이미 선택한 좌석입니다”라는 안내가 떴다. 김씨는 결국 예매에 실패했다.

7분 뒤 이날 오후 2시 7분,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엔 “한국시리즈 티켓을 15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정가(4만원)에 비해 세 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지만, 금세 판매가 완료됐다. 이후에도 이 플랫폼에선 암표 거래가 줄을 이었다. 티켓 예매를 진행한 인터파크트리플은 암표상들이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이용해 티켓을 사들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비정상 경로를 이용한 티켓 대량 구매 가능성을 모니터링 중”이라고 설명했다.

'2023 KBO 한국시리즈' 티켓 재판매 글.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2023 KBO 한국시리즈' 티켓 재판매 글.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암표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인기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 티켓 정가는 VIP좌석 기준 16만500원이지만,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최고 5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됐다. 이날 중고거래 플랫폼에선 유명 가수 외에도 단풍명소로 꼽히는 경기도 광주의 화담숲 입장권도 웃돈을 얹은 암표를 판매한다는 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화담숲 입장권의 경우 성인 1만원 짜리 입장권이 주말 기준 4~5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암표의 이같은 확산은 과거 전문 암표상들의 전유물이었던 매크로 프로그램의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7일 ‘엑스(X·옛 트위터)에 ‘매크로’를 검색하자 판매업자를 통해 3만원에 프로그램을 구매하기까지 1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판매자가 전달한 송금 페이지에는 4300명 넘는 이들이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판매자 A씨는 “컴맹이라는 분들도 잘 사용하고 계신다”고 자랑했다.

매크로를 직접 만들기도 쉬워졌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활용해 원하는 사이트에 어떤 입력 값을 넣을지 설정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식이다. 실제로 7일 챗GPT가 알려준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니 보안문자 입력부터 좌석 선택, 결제까지 모든 단계에서 매크로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매크로 프로그램.

온라인에서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매크로 프로그램.

정부에서도 진화하는 암표상들에 발맞춰 법을 개정하는 등 규제를 강화해왔다. 과거 경범죄처벌법으로 암표상을 처벌했던 검·경 등 수사기관은 2010년대 이후 온라인 암표상이 확산하기 시작하자 조직적 암표 판매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내년 3월부터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다량으로 사재기한 공연 입장권 및 관람권 등의 부정 판매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자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공연법 개정안도 시행된다.

문제는 매크로를 이용한 티켓 구매를 적발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팀더블유의 김정한 대표는 “셀레니움(웹사이트를 분석해 정보를 모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대학생들도 하루이틀 안에 매크로를 만들 수 있다”며 “매크로를 막는 기술과 이를 뚫는 기술은 서로 계속 진화해 가고 있다. 기술적으로 매크로를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티켓 재판매를 막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에선 티켓 재판매를 허용하되 가격에 상한을 정하고, 액면가 및 좌석위치를 공개하도록 하는 등 규제를 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법적인 티켓 재판매 업자들을 적발해 처벌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인 만큼 양성화 대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