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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조 '유령조합원' 잡아낸다…尹정부 노조개혁 2라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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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시장을 조성하고 근로자 전체의 권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동개혁을 추진해왔다”며 “합법적인 노동운동은 철저히 보장하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노와 사를 불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시장을 조성하고 근로자 전체의 권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동개혁을 추진해왔다”며 “합법적인 노동운동은 철저히 보장하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노와 사를 불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사진기자단

‘노동조합 회계 투명화’를 둘러싼 노동계와의 씨름에서 판정승을 거둔 윤석열 정부가 이번엔 ‘조직 투명화’에 드라이브를 건다. 노조 조합원 수가 자진신고 방식으로 집계되다 보니 정확성이 떨어지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유령노조’를 잡아내기도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고 7일 밝혔다. 노조가 행정관청에 조직 현황을 통보할 때 세부 사업장별 조합원 수까지 구분해서 밝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각 노조는 매년 1월31일까지 전년도 12월31일 기준 조합원 수를 행정관청에 통보해야 한다. 정부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노조 조직률 등도 이같은 방식으로 생산된 통계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노조들의 ‘셀프 신고’에 의존하는 구조다 보니 실제 규모보다 부풀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 8월 "노조 현황이 정확하게 통계에 반영될 수 있도록 조사·분석 과정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고, 노조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대상도 면밀히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개정되는 노동조합 정기현황 통보서 서식. 사업(장)별 조합원 수까지 세세하게 게재하도록 바뀐다. 고용노동부 제공

개정되는 노동조합 정기현황 통보서 서식. 사업(장)별 조합원 수까지 세세하게 게재하도록 바뀐다. 고용노동부 제공

이에 정부는 노조가 신고하는 조합원 수 현황을 사업장 단위까지 세분화해서 받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하기로 했다. 현행 시행령에도 ‘둘 이상의 사업(장)의 근로자로 구성된 단위노조는 사업(장)별로 구분해 통보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시행규칙상 서식(노조현황 정기통보서)이 미흡한 탓에 유명무실화됐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개정된 서식은 ‘단위노조 산하조직 및 사업(장)별 조직 현황’을 추가하고 ▶수준(단계)별 산하조직 명칭 ▶사업(장)명 ▶조합원 수 등을 구체적으로 기입하도록 구성됐다. 예컨대 ‘금속노조 울산지부’ 조합원 수뿐만 아니라 울산지부에 속한 현대제철지회·삼성전자서비스울산지회 등 각 사업장별 조합원 수까지 구분해서 신고해야 하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자기보고식 신고의 한계로 노조 현황 파악에 있어 다양한 오류가 발생해왔다”며 “통계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근본적으로 정부가 직접 노조의 조직 현황 통계를 관리하기 위한 연구용역도 추진되고 있다. 최근 고용부가 발주한 ‘초기업단위 노조 조직현황 실태조사’ 정책연구과제 입찰공고를 살펴보면 정부는 ▶초기업단위별 상급단체 현황 ▶사업(장)별 조직현황 및 조합원 수 ▶기업규모별 조직현황 등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를 통해 노조 운영체계 파악하려 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개통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개통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일련의 조치에 나서는 것은 노조 조합원 수 부풀리기나 유령 노조 설립에 따른 부작용을 근절하고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노조 조직 현황은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과 같이 정부 위원회나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 비율을 결정하는 데 활용되는 등 노동정책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고용부가 올 초 정기통보서를 제출하지 않은 1126곳을 전수조사해보니, 780곳이 실체가 없는 노조로 드러났다.

실리적인 이유도 있다. 대표적으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는 조합원 수에 비례에 타임오프 시간이 주어지는데, 만일 조합원 수가 부풀려졌다면 과도하게 부여받을 수 있다. 최근 고용부가 타임오프 운영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 실제 조합원 수를 초과해 타임오프를 오남용한 사례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복수노조 사업장에선) 단체 교섭에서 내부 투표가 결렬될 경우 과반수 노조가 교섭 대표가 되고, 노조 조합비 수입과도 직결되는 등 조직 현황은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정보”라며 “정밀한 파악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한 축인 노조 회계 공시 제도의 연장선상으로도 해석된다. 현재 노조 회계공시 시스템에 등록된 노조는 이날 오후 4시 기준 총 105곳으로 늘어났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참여 노조는 30여곳에 불과했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이 모두 정부의 회계공시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이후 빠르게 확산돼 100곳이 넘었다. 회계 공시도 자산·부채·수입·지출 등 재정 현황뿐만 아니라 조합원 수 등을 같이 기재해야 한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노동계 반발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자칫 노조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여전히 노조 자진신고로 이뤄지는 구조인 만큼 정부 조치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고용부 관계자는 “회계 공시 제도가 정착된 만큼 노조 현황 정기통보와 함께 크로스체크를 하는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 투명성을 확보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용부는 또 다른 노동개혁 과제인 근로시간제 개편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오는 13일 발표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 9월 설문조사가 마무리됐지만, 한 차례 반발을 직면한 만큼 분석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발표가 계속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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