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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비상 대비 ‘국가동원시스템’ 허술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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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계명 동국대 비상안전학과 겸임교수·전 행정안전부 비상대비국장

최계명 동국대 비상안전학과 겸임교수·전 행정안전부 비상대비국장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10월 7일)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하마스는 유대교 명절(수코트)이 끝난 직후 안식일 새벽에 로켓포 수천 발을 퍼부으며 기습 침투했다. 이스라엘 민간인 등 1400여 명을 살해하고 220여 명을 인질로 잡아갔다.

이스라엘은 즉각 국가동원령을 발령하고 48시간 이내에 예비군 30만 명과 전쟁물자를 동원했다. 하마스의 거점인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평소 준비한 동원시스템으로 전열을 가다듬으며 가자지구 점령 작전을 펴고 있다.

하마스에 기습 당한 이스라엘
동원체제 갖춰 신속하게 반격
‘국가비상기획위’ 역할 살려야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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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하마스가 사용한 기습공격 작전은 북한의 대남 공격 전술과 매우 흡사하다. 만약 북한이 도발을 감행한다면 대한민국도 이스라엘처럼 초반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우려가 크다. 문제는 도발 이후에라도 지금의 이스라엘처럼 신속히 동원시스템을 가동해 즉각적인 반격과 궤멸 작전에 나설 수 있을지가 미지수라는 점이다.

전쟁은 많은 병력과 최신 무기를 가졌다고 꼭 이기는 것이 아니다. 적 공격에 대한 주민 대피 및 보호, 주요 생필품 공급, 국가 산업시설 유지, 국민 의지와 단결, 후방 군수지원 능력 등 국가 전체의 응집력에 좌우된다.

예부터 전쟁은 군사적 능력과 함께 비군사 분야의 국가 역량에 의해 결정되는 국가 총력전 양상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결국 이런 요소에 의해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평시 시민 보호를 위한 민방위사령부(HFC), 전시 국민생활안정과 군사작전 지원을 위한 국가 비상경제운영본부(MELACH) 등 비군사 작전을 위한 전담 국가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48시간 이내에 모든 예비전력을 적시에 동원했기 때문에 반격이 가능했고, 민간인 피해도 최소화했다. 반면 하마스는 이러한 비상대비체제를 갖추지 못한 채 기습공격을 감행하는 바람에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다.

만약 북한이 하마스처럼 공격하면 한국도 초기에 군사적 대응은 가능하겠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국가 예비전력 동원 문제, 단전·단수 사태, 생필품 부족, 민간인 구호 등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한 비군사적 대응 태세는 지금의 역량으로는 몹시 어려워 보인다. 그만큼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이번에 이스라엘이 대응한 것처럼 비상대비라는 정부의 비군사적 대응 태세가 중요하다. 비상 대비는 전쟁발발 시 예비 인력과 물자를 동원해 군사작전을 지원하고, 행정기능과 기간산업을 유지하며, 생필품과 구호물자가 차질없이 공급되도록 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장관급 정부기구인 ‘국가비상기획위원회’가 이 역할과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이 기구를 해체하는 바람에 지금은 행정안전부의 1개국이 담당한다. 기능과 역할을 급격히 축소해 실질적인 전쟁대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걱정이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우리 정부의 비군사적 전시대비 업무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국가동원 시스템 전반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점검이 필요하다. 국가동원이란 평시 체계를 비상시 긴급체계로 전환해 자원을 운용하는 개념이다. 인력·물자·산업·수송·시설동원 등 방대한 자원을 통제해야 하고 백신 등 311종의 비축물자도 전장에 투입해야 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 사태 직후 ‘국가동원체제연구위원회’를 설치해 국가동원 능력 전반을 점검하고 ‘충무계획’을 최초로 작성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가칭 ‘국가동원연구위원회’를 한시적으로라도 만들어 전반적인 점검에 나서야 한다.

둘째, 궁극적으로는 과거 국가비상기획위원회와 같은 국가 비상대비 조직을 정상적으로 복원해야 한다. 이 조직은 범정부적으로 중앙부처와 지자체를 조정·통제할 수 있는 상급기관으로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실이나 총리실 산하 조직으로 편성해야 한다.

북한이 도발한 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전시 비군사 분야 대비업무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국가 조직을 신속히 재정비해 효율적인 총력전 대비 태세를 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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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명 동국대 비상안전학과 겸임교수·전 행정안전부 비상대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