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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원영 스님의 마음 읽기

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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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제 나이 10살에 은사 스님을 만나 60년을 살았습니다.” 얼마 전 입적하신 노스님의 영결식에서 올해 70세 되신 은사 스님의 첫마디였다. 목이 메어 힘들게 꺼낸 어릴 적 이야기를 들으며, 영결식에 참석한 대중은 눈시울을 붉혔다. 막내 사제는 엉엉 소리까지 내며 울었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노스님의 삶이야 말해 뭐하리. 하루하루가 고난이요, 고통이었을 텐데.

노스님은 세수 90세에 생을 마감하셨다. 도량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지는 바람에 마지막 3년여 동안 거동을 못 한 채였다. 대부분 그렇듯 처음엔 극진하게 곁을 지켰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니 간절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는 버거운 짐이 되었다.

세수 아흔에 돌아가신 노스님
고관절 다쳐 3년간 꼼짝 못해
최근 주목받는 존엄사·안락사
기품 있게 삶을 마무리하려면…

나도 어쩌다 가서 병상을 들여다보면, ‘인생무상(人生無常) 개시허망(皆是虛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목나무 가지처럼 말라가는 형상, 밥 한 숟가락 자신의 의지로 뜰 수 없는 모습, 욕창이 난 몸…. 보고 있으면 불현듯 나의 미래도 저런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차마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삶! 아,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떨까? 뭐,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죽고 싶을 것이다.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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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 당일, 노스님은 점심 공양을 남김없이 드시고는 “고맙다. 미안하다. 이제 간다.” 두 번 말씀하신 뒤 그대로 잠에 드셨다. 부처님처럼 석 달 전에 말씀하셨으면, 더 지극정성으로 모셨을 텐데, 자조 섞인 후회가 밀려들었다.

마침 요즘 『대반열반경』을 강의하다 보니,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의 부처님 심경을 헤아려 보곤 한다. 열반에 들기 석 달 전 대중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몸에도 늙음은 닥쳐오고 생명의 불꽃 가냘파지니, 자,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귀의처로 하여 끝없이 비구들이여, 게으름 피우지 말고 바르게 사념하여 선계(善戒)를 지키고 사유를 다스리며 자신의 마음을 지켜라. 내가 설한 법과 율을 결코 게을리 말고 정진하면, 세세생생 윤회를 끝내고 괴로움의 끝은 다하리.(『대반열반경』, 민족사, 93쪽)”

노스님의 장례를 치른 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러다 며칠 전, 법조계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존엄사(尊嚴死)’ 제도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실 나의 질문은 존엄사보다도 안락사 가능 여부였다. “우리나라에선 존엄사에 관한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했더니, 내 물음의 진의를 간파하고서 “우리나라에선 아직 안 됩니다. 많은 분이 대체로 공감하지만, 선뜻 누구 하나 나서서 공론화가 안 되는 편이죠.”

연명치료는 거부할 수 있지만, 스스로 생을 끝내는 것은 안 된다고 들었다. 악용할 여지로 반대가 크다는 것이다. 얘기를 다 듣고 나니까 더더욱 나는 ‘왜 불합리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생에 대한 미련이 없는 출가자도 늙고 병들어 앓아눕게 되면 도리가 없다. 생사(生死)가 본래 따로 없다며 멋진 구절로 죽음을 미화한다 해도, 생사의 갈림에 어쩔 수 없는 병고들이다. 그 어떤 생의 형태로도 재생하지 않을 것처럼 호방하게 살았다지만, 결국 출가자도 별수 없다. 나이 들어 아프면 치료도 받아야 하는데, 승려 복지마저 열악한 형편이라 많은 스님이 자신의 불안정한 노후를 걱정한다.

무릇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소멸한다. 그 소멸의 형태가 오늘날에는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인간 욕심만큼의 생명이 연장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사랑하는 이를 차마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람의 심경이야 오죽할까만, 누워있는 이의 입장에선 삶의 질이 너무 떨어져서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이다.

존엄사를 다룬 여운 짙었던 영화가 있다. ‘미 비포 유(me before you, 2016)’에서 여주인공은 죽음을 원하는 사랑하는 이에게 말한다. “내 곁에서 그냥 살아주면 안 되나요?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남자는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건 내 인생이 아니에요. 난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각자가 원하는 삶의 풍경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일생을 함께하고 싶은 소망이 가장 클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는 이 곁에서 눈을 감고 싶을지도…. 나는 존엄한 삶이 죽음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내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생의 마침표는 스스로 찍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만, 기품 있게 생을 끝낼 수 있도록 말이다.

‘삶’이라는 영화가 끝났을 때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망자의 인연들이 흐르는 음악과 함께 회한으로 처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원영 스님·청룡암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