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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 매각, 2000명 감원 저울질…한전 허리띠 졸라맨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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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천문학적 손실이 쌓인 한국전력이 전기요금 조정에 앞선 자구책으로 자회사 지분 매각, 정원 감축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남은 대규모 자산인 인재개발원도 매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7일 여권·전력업계 등에 따르면 한전은 보유 중인 자회사 지분 일부를 민간에 매각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12개 자회사 중 한전KDN·한전원자력연료·한국전력기술 등 3곳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이 중 핵심은 주식시장 상장을 앞둔 한전KDN이다. 상장 후 한전의 전산 업무를 독점하는 KDN 지분을 팔면 수십억~수백억원의 ‘실탄’이라도 챙길 수 있어서다. 다만 한전원자력연료와 한국전력기술은 원전 업무 등을 맡은 특수성 때문에 민간 매각이 쉽지 않을 거란 목소리도 나온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한전은 현재 2만3000여 명 수준인 본사 직원 정원을 줄이는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감축 규모는 미정이지만 2000명 규모까지 언급되고 있다. 정원 조정은 기획재정부에서 할 수 있고, 구조조정과 직결되는 현원과 달리 노조 동의 사항이 아니라 부담이 덜한 편이다.

대규모 정원 감축이 현실화되면 MB(이명박) 정부 시절이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정원을 한 번에 칼질하기 어려운 만큼 수년에 걸쳐 정년 퇴직자를 내보내고 희망퇴직도 추가로 받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취업 시장과 직결되는 신규 채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기존 직원이 나가는 대신 신입 사원 채용엔 영향이 없는 쪽으로 한전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조직 군살 빼기에 따른 노조 반발이 불가피하고, 인력 부족에 따른 안전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그간 한전이 꾸준히 자구책에 포함해온 자산 매각도 병행 추진된다. 지난 5월 자구안 발표 당시 여의도에 위치한 남서울본부를 매물로 내놓은 데 이어 이번엔 서울의 또 다른 알짜 부동산으로 꼽히는 공릉동 인재개발원 매각을 저울질하고 있다. 서울 시내 부지인 만큼 매각이 성사되면 부채 감축에 도움이 될 거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인재개발원 부지에 연구용 원자로가 있는 만큼 거래가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남서울본부도 부지 내 변전소 이전 문제로 매각이 지연되고 있어서다. 일찌감치 매각 리스트에 오르내리던 한전 배구단은 일단 자구책에서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수 대상을 찾기 쉽지 않은 데다 연 운영비가 30억원 안팎으로 크지 않다는 점이 고려됐다.

고강도의 추가 자구책 아래엔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전제조건으로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제시한 상황에서 내놓을 카드는 최대한 꺼낸다는 취지가 깔렸다. 앞서 김동철 한전 사장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규모의 인력 효율화 등의 계획이 담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전은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2021년 이후 47조원 넘는 적자가 누적됐고, 올 6월 말 기준 총부채는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겼다.

전문가들은 4분기 전기요금 현실화가 이뤄져야 한전 재무 위기가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당정은 산업용 요금 위주로 인상하는 걸 포함해 다양한 조정 방안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선거를 앞둔 내년 1분기는 차치하더라도 올 4분기에 최대한 전기료를 올려야 초유의 위기가 이어지는 한전 경영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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