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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톨스토이와 베토벤…크로이처 소나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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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회숙 음악평론가

진회숙 음악평론가

“그들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첫 악장의 프레스토를 아세요? 아시냐고요? 으! 이 소나타는 정말 너무 무시무시합니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에 나오는 주인공 포즈드니세프의 대사다. 그는 아내가 투르하체프스키라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했던 장면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크로이처 소나타’는 무시무시한 음악이다. 세상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상처받은 영혼의 음악이라고나 할까. 더블 스토핑으로 느릿하게 시작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이 음악은 섬뜩한 광기를 드러내고 있다. 듣는 사람의 감성을 신경질적으로 건드리며 질주하고 탄식한다.

음악으로 읽는 세상. [일러스트=김지윤]

음악으로 읽는 세상. [일러스트=김지윤]

포즈드니세프는 투르하체프스키가 음악을 통해 자기 아내를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증오와 질투를 느꼈다.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드는 음악의 최면적인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두 사람의 이중주를 지켜보면서 마치 불륜 현장을 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빛은 신성한 결혼의 법칙을 무시하는 부도덕한 사회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으며, 날카로운 맹수의 발톱처럼 폐부를 찌르는 바이올린 소리는 비명을 지르며 주인공의 복수심을 부추겼다. 질투심에 눈먼 주인공은 결국 아내를 살해하고 만다.

베토벤의 음악이 문제였다. 톨스토이는 ‘크로이처 소나타’와 같은 자극적인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음악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우려가 있다면서 베토벤의 음악에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크로이처 소나타’를 들으며 인간의 도덕적 의지와 이성을 마비시키는 베토벤 음악의 최면적인 힘에 섬뜩함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진회숙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