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동업 깨고 411m 거리에 차린 헬스장…재판부 의외의 판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시내의 한 체육시설 모습.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체육시설 모습. 뉴스1

A씨=왜 내가 더 많이 일해야 해
B씨=내가 초기 자금을 더 많이 댔잖아
A씨=됐어. 나 관둘래

A씨와 B씨는 2021년 7월 헬스장을 함께 차린 뒤 공동 경영을 해왔던 사이다. 그런데 지난 6월 A씨는 돌연 B씨에게 이런 시비를 건 뒤 동업 관계 청산을 요청해왔다.

 두 사람은 계약서를 작성했다. ▶공동사업을 해지하고, 헬스장 사업은 B씨가 단독 운영한다 ▶B씨는 A씨에게 동업계약 탈퇴에 따른 정산금 3000만원을 지급한다 ▶헬스장 재산인 공기청정기, 세탁기, 유명 H사 스피커는 A씨가 가져간다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B씨 노파심으로 ‘상법상 규정된 경업금지 의무를 준수한다’는 조항까지 못 박은 뒤, 두 사람은 깔끔하게 동업관계를 청산하는 듯했다. ‘경업금지 의무’란 영업을 양도한 경우 양수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양도인이 인접한 지역에서 최대 20년간 동종 영업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동업 해지로부터 10여일 뒤, B씨는 자신의 헬스장에서 반경 411m 떨어진 곳에 새로운 헬스장이 차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인은 다름 아닌 A씨였다. A씨가 가져나간 공기청정기, 세탁기, H사 스피커도 고스란히 그곳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물리적 시점상, A씨가 공동 경영 기간 동안 또 다른 헬스장 창업을 B씨 몰래 준비해왔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분노한 B씨는 법원에 A씨를 상대로 경업금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영업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의정부지방법원 전경. 전익진 기자

의정부지방법원 전경. 전익진 기자

재판부가 손을 들어준 것은 의외로 A씨였다. 의정부지법 제30민사부(부장 권희)는 9월 15일 B씨의 영업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쟁점은 두 사람이 동업 관계를 청산한 게 ‘영업양도’ 행위에 해당하는지였다. ▶만약 영업을 양도한 경우라면, 상법 41조 1항은 양도인에게 10년간 인접 지역 동종영업 금지 의무를 자동으로 부과하고, ▶여기에 더해 서로 간 ‘경업금지 약정’까지 체결한 경우라면 41조 2항은 최대 20년까지 그 효력을 인정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동소유했던 헬스장 재산이 B씨의 단독소유가 되면서 마치 영업자산이 이전되는 것과 같은 외관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상법상 영업양도로 볼 순 없다”며 “2인으로 구성된 동업관계에서 A씨가 탈퇴하면서 그 탈퇴로 인한 계산에 관하여 정한 것은 동업해지에 불과하므로, 상법 41조가 자동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두 사람이 별도로 작성한 ‘경업금지’ 약정의 효력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별도의 계약서를 통해 상업 41조에서 정한 경업금지의무를 A씨에게 부과하기로 합의한 것이라곤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경업제한의 구체적 내용과 기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바 만약 계약서대로 상법 조항을 적용하면, 20년간 동종영업을 금지당하는 것이 되는데 이는 직업선택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봤다.

최근 헬스장이 우후죽숙 생겨나며 이런 법정 분쟁도 잦아지고 있다. 대출비교 플랫폼 핀다가 헬스 업종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5월 기준 전국 헬스 관련 업종의 매장 수는 총 2만6735곳으로 2021년 1만9503곳에 비해 약 37% 증가했다. 최지현 변호사(법무법인 사유)는 “헬스장들의 유혈 경쟁 속에, ‘경업금지 의무’를 둘러싼 양도인과 양수인 간 소송전이 왕왕 발생하고 있다”며 “관건은 실질적인 ‘영업 양도’ 여부로, 만약 순수한 영업 양도 행위가 아니라면, 경업금지 의무를 인정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