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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하루 평균 22억원 피해…피해자 비난 겁나 당해도 신고 안 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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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호 09면

전청조 사건으로 본 사기 백태 

서준배 교수

서준배 교수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기 범죄는 계속 벌어질 겁니다.”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 민생사기근절특위 위원인 서준배 경찰대 교수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첫 범죄 피해가 사기로 인한 위탁물(선악과) 횡령 사건일 정도로, 사기는 유서 깊은 범죄”라고 말했다. 17세기(신대륙 투자)와 19세기(금광 투자), 21세기(가상자산), 그리고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전청조씨의 사례도 본질은 동일한 수법이란 것이다. 서 교수는 “단순히 형량을 높이는 것 만으론 사기 범죄를 줄이기 어렵다”며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기꾼의 신상을 공개하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기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형태만 바뀔 뿐 예나 지금이나 사기의 기본 원리는 동일하다. 해외에선 ‘나이지리아 419 사기’로 유명한 ‘선 비용, 후 보상’ 사기 구조다. 거액의 은닉 자금이나 유산 등을 찾으려 하니 돈을 빌려 달라는 식이다. 나이지리아 형법 제419조가 사기죄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최근 부각된 일련의 사기도 같은 구조다. 예컨대 전청조씨는 자신이 재력가임을 내세워 향후 막대한 보상을 미끼로 투자금을 요구해 가로챘다는 혐의를 받는다. 지난 4월 연예인 임창정씨가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진 라덕연 H투자자문 대표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사기 피해자 10명 중 1명만 신고 추정

같은 구조인데 계속 통하는 이유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선 인간을 오류투성이의 존재로 본다. 욕심이나 공포, 외로움 등 본능적 욕구 때문에 판단에 오류가 발생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타인의 사기 사례를 보고 비웃던 사람도 판단 오류에 빠지면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사기꾼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사기꾼들은 연극성 인격장애를 가진 경우가 많다. 과시하고 주목받는데 능숙해 인간의 욕구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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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의 과도한 욕심도 도마 위에 오르곤 하는데.
“옳지 않은 일이다. 영국 포츠머스대 마크 버튼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기 범죄 피해자는 과거 성범죄 피해자와 같은 처지’다. ‘욕심이 과했다’라거나 ‘무지해서 당했다’는 식의 비난은 과거 성범죄 피해자에게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니 표적이 됐다’고 비난하는 것과 동일한 일이다. 일종의 2차 가해다. 비난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기 피해자 10명 가운데 한명만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그러나 비난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는 건 범죄자를 돕는 일이다.”
어째서인가.
“사기 범죄는 재범률이 높다. ‘폰지 사기’로 유명한 찰스 폰지도 캐나다에서 학습한 사기 방식을 미국에서 써먹었다. 남아메리카로 추방되자 그곳에서도 써먹었다. 국내에서도 사기 전과자 5명 중의 2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가 비난 받을까 두려워 신고하지 않으면 사기꾼은 어디선가 또 다른 피해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기 범죄의 판도가 변한 것도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한 이유다.”
사기 범죄 판도는 어떻게 변했나.
“스마트폰과 핀테크의 발전으로 사기 범죄 효율이 높아졌다. 예컨대 택배 스미싱(스마트폰 메시지를 통한 사이버 범죄) 사기만 하더라도 일상적인 안내 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된다. 의심 없이 열어 봤다간 피해를 보는 식이다. 불법 주식 리딩 방이나 투자 사기도 마찬가지다. 메신저를 활용해 과거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다수의 사람에게 사기를 칠 수 있다. 수십년 전 사기꾼들처럼 피해자를 모아 놓고 설명회를 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만날 필요도 없으니 검거는 더욱 어려워졌다. 적극적인 신고로 또 다른 피해를 방지하는 게 최선이다.”
사기 범죄 급증이 기술의 발전 때문이란 얘기인가.
“그렇다. 흔히 말하는 ‘한탕주의’나 ‘사회적 신뢰 상실’의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기술의 발전이라고 본다. 실제로 국내에선 2015년을 기점으로 절도 범죄 보다 사기 범죄가 더 많이 벌어진다. 속된 말로 절도는 돈이 안되는 탓이다. 정보통신과 금융 기술이 발전하자 매년 현금 사용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다. 현금은 은행에 넣어 놔도 불편하지 않으니 지갑에 넣고 다니는 현금 규모도 줄었다. 절도가 쉽지 않아진 셈이다. 반면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는 건당 평균 2500만원, 하루 평균 22억원의 피해가 발생한다. 범죄자 입장에서 절도나 강도는 사양 산업이고 사기는 유망 산업이란 얘기다.”
피해를 보면 정신적인 충격도 상당하다.
“사기 피해자들은 우울증은 물론 분노 조절 장애, 대인기피증 등으로 수년간 고생한다. 통계적으로도 사기 범죄가 급증한 뒤에는 자살율이 높아지는 추세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인과관계가 명확하다고 할 순 없지만, 자살과 사기 범죄 사이에 상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흉악 범죄 피해자는 치료비 등을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데, 사기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에게만이라도 사기 예방 교육을 제공하고, 사기 피해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상담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손 놓고 있으면 모방 범죄가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사기 범죄의 전염성이 강한 탓이다. 피해는 복구 되지 않고 범죄자는 사회에 복귀하는 상황을 보면 ‘나도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기죄 처벌이 미미하단 지적도 있는데.
“우리 형법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지만 길어야 4~5년가량의 징역형에 그친다.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 등에선 수십 년에 달하는 징역형도 어렵지 않게 선고된다. 역사상 최악의 사기를 저지른 ‘폰지왕’ 버나드 메이도프는 150년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2021년 교도소 병원에서 사망했다. 중국은 사형도 가능하다. 한국도 사기를 치면 패가망신 당한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선 벌금형이라도 상향할 필요가 있다. 2000만원의 벌금으론 사기 범죄 억제력이 생기기 어렵다.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사기꾼 신상 공개해 재범 못하게 해야

범죄 수익 환수율도 낮은데.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 주요국 모두가 사기 범죄 수익 환수에 어려움을 겪는다. 범죄자들은 처음부터 금전 획득이 목적인 경우가 많아 범죄 직후 가상자산이나 해외 계좌를 통해 자금을 빼돌린다. 검거해도 피해 복구가 가능한 경우가 거의 없다. 국내에선 부패재산 몰수 특례법에서 일부 범죄에 한해 범죄 수익 환수가 가능하다. 보이스피싱과 유사수신, 다단계 사기 등에 해당되고 일반 사기죄는 환수가 어렵다. 추징 명령을 내리지만 안 내도 노역을 강제하지는 않는다. 벌금은 안내면 강제 노역을 해야 하지만, 추징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들은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빠진다는 게 사실 더 큰 문제다.”
대안은 없나.
“신상 공개부터 검토해야 한다. 사기 범죄는 재범률이 높기 때문에 신상 공개가 꼭 필요하다. 얼굴이 알려지면 또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발 빠른 피해 금액 동결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사기 범죄 수사의 핵심은 신속한 계좌 동결에 있는데, 국내에선 현재 보이스피싱에 한해 범죄 추정 자산의 즉시 지급 정지가 가능하다. 일반 사기는 사기라는 판단이 내려져야 지급 정지가 가능한데, 기다리다 골든 타임을 놓치기 십상이다. 정부 차원의 사기 통합 대응 컨트롤센터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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