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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 경색, 중 불경기 겹쳐…항공기·선박 70% '텅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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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호 12면

‘유커 특수’ 왜 안 오나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서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서 쇼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서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서 쇼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저녁 8시 45분, 중국 정저우에서 단체관광객(유커)을 태우고 온 서부항공 전세기가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유커를 태운 전세기가 뜬 것은 6년 10개월 만이다. 중국 정부는 2017년 3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한류 금지령(한한령)을 내린 바 있다. 제주공항에 따르면 이달부터 정저우를 비롯해 허페이·푸저우 전세기 노선도 각각 주 2회씩 운항을 시작한다. 내달부터는 충칭과 청두, 칭다오 등 대도시와 제주를 잇는 전세기가 본격적으로 운항할 예정이다. 한 여행업체 관계자는 “무비자 관광이 가능한 제주도는 중국인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만큼 전세기 운항이 늘어나면 관광객 수도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다만 관광객이 정점을 찍은 2016년 수준을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8월 중국 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78개국에 대한 자국민의 단체관광을 허용할 당시 관광·유통업계가 들썩였다. 사실상 6년 여 만에 ‘유커의 귀환’이 공식화된 덕분이다. 2016년 약 807만명으로, 전체 외국 관광객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던 중국인 관광객 수는 이듬해 반토막 났다. 이후 코로나19까지 닥치며 올해 1~7월 누적 중국 관광객 수는 77만명으로,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14%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단체관광 허용 발표는 관광업계의 갈증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됐다. 업계는 특히 중국 국경절과 중추절 연휴가 시작되는 9월 말~10월초 경에 관광객이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채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기대했던 ‘유커 특수’는 없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중국 관광객 수는 연초부터 꾸준히 증가 추세지만, 단체관광 발표 직후인 8월(26만명)과 9월(26만4000명) 관광객 수에 큰 차이가 없었다. 항공편 이용객도 증가율이 더디긴 마찬가지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 1~8월 국제선 노선 여객 규모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중국은 아니었다. 2019년 동기 대비 중동(109.9%) 노선은 오히려 소폭 증가했고, 미주(99.3%), 일본(92%) 노선도 정상화됐다. 반면 중국 노선의 회복률은 31.1%에 그쳤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선박편은 더욱 심각하다. 인천항만공사는 8월 중국 칭다오발 카페리를 시작으로 3주간 4개 항로의 카페리 운항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원 대비 탑승률은 최고 24%에 그쳤고, 대부분 20% 미만에 머물렀다. 한중카페리협회에 따르면 11월 현재 인천·평택·군산항과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 16척 중 8척만 운행 중이다. 최용석 한중카페리협회 사무국장은 “국경절 연휴와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승선객이 일시적으로 늘긴 했지만 평소보다 10%포인트 가량 증가하는데 그쳤고, 평균 탑승률은 20%를 밑돈다”며 “한·중 외교 관계 등으로 인한 정서적인 문제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여서 내년 상반기는 돼야 승객 수가 본격적으로 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언제 관광객이 회복될지 모르니 현재는 선박 수리와 항만 안전을 점검하는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카페리 운영업체 관계자는 “카페리 운임 정가가 편도 15만원 정도인데 승객이 워낙 적어 현재는 상시적으로 50% 이상 할인 중”이라며 “예년에 비해 절반가량만 운항하는데도 직원보다 승객이 적으니 적자만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항공권에 비해 운임이 저렴한 카페리 승객 대부분은 ‘따이공(중국 보따리상)’으로 불리는 소상공인들이었다. 이들의 주요 소득원은 면세품, 그중에서도 마스크팩과 같은 중저가 화장품과 밥솥이었다. 그러나 중국 내 불경기로, 이를 구매할 만한 여력을 지닌 소비자가 줄면서 따이공의 발길도 뜸하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평택항을 이용해 한 달에 서너 번씩 한·중을 오갔다는 옌타이 출신 따이공 장웨이는 “예전엔 면세점 할인율이 45%는 됐는데 이제는 30% 초반으로 낮아져 가져가 팔아도 남는 것이 별로 없다”며 “한국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예전만 못하고, 구매대행 가격이 예전만큼 경쟁력이 없어 따이공 숫자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항공·선박 노선이 정상화 돼도 유커가 당장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은 적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현진 한국관광공사 중국팀 팀장은 “이달부터 연말까지 인센티브 단체관광이 조금씩 들어올 계획이지만 소비력이나 규모 등 회복 탄력성이 당초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우선 중국 경기가 회복해야 내국 관광이 이뤄지고, 해외 관광이 뒤따라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한령 이후 중국 내 애국주의가 득세하고, 양국 관계가 예전만 못한 점도 걸림돌이다.

중국전담여행사 케이씨티트래블의 장유재 대표는 “올해 초만 해도 양국은 입국 제한 조치와 단기비자 발급 중단 등으로 갈등을 빚었던 만큼 관광 교류가 바로 회복되긴 어렵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6년간 한국을 떠나있던 유커의 마음을 돌려놓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예전과 달라진 유커의 여행 패턴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보다 은퇴가 빠른 중국에선 50대에 일을 관두고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신중년이 중국 내 단체여행 수요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젊은 층에 비해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는 데다 단체여행을 선호하는 신중년을 새로운 유커로 보고, 이들을 겨냥한 새로운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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