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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유일한 서점, 문 닫았다…복사실 자리엔 '인생 네컷'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흑석동 중앙대의 유일한 구내서점이 지난달 31일 영업을 종료했다. 사회적 변화로 인해 매출 급감하자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 이찬규 기자

서울 흑석동 중앙대의 유일한 구내서점이 지난달 31일 영업을 종료했다. 사회적 변화로 인해 매출 급감하자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 이찬규 기자

“폐업했습니다. 그동안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달 31일부로 서울 흑석동 중앙대 정문에 위치한 유일한 구내서점이 문을 닫았다. 자물쇠로 잠긴 문엔 폐업을 안내하는 A4용지가 붙어있었다. 빨간색 벽돌로 지어져 ‘빨벽’이라고 불리던 학생회관에 있던 서점이 약학대 건물로 장소를 옮긴 지 12년 만이다. 이 서점을 20년 가까이 운영해 온 A씨는 폐업 1, 2주 전부터 62평 규모의 서점 내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개강이 다가오면 출입구를 다르게 하고 이동 동선도 정해줄 정도로 서점이 붐볐다. 그러나 대형서점 확산과 인터넷거래 활성화 그리고 여전한 불법제본은 서점을 위축시키기 시작했다. 교수들이 PPT나 PDF 파일을 강의자료로 제공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서점을 찾는 발길이 줄어든 이유였다. A씨는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매출이 과거의 20~30% 정도로 떨어졌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매출은 회복되지 않았다”며 “다시 살아날 가망도 없어 보여 결국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12년 넘게 자리를 지키던 문구점이 지난 9월 폐업했다. 공실을 채울 새로운 가게를 아직 찾지 못했다. 이찬규 기자

12년 넘게 자리를 지키던 문구점이 지난 9월 폐업했다. 공실을 채울 새로운 가게를 아직 찾지 못했다. 이찬규 기자

서점 옆에 위치했던 프랜차이즈 문구점은 이보다 앞선 지난 9월 30일 폐업했다. 마지막 한달 동안엔 전 품목 30% 할인 행사를 펼쳤다. 요즘 학생들은 노트와 펜으로 수업 내용을 필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노트북 키보드로 수업 내용을 받아치거나 테블릿 PC로 필기하는 학생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21학번 대학생 윤모(21)씨는 “대부분 책상 위에 책이 아니 노트북이나 테블릿PC를 올려두고 수업을 듣는다”며 “학내 서점이나 문구점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16학번 학부생으로 입학해 현재 대학원을 다니는 김모(26)씨는 “개강 시즌에는 무조건 서점을 찾아 전공 서적을 샀다. 나름대로 추억이 있던 곳이 사라지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 신촌동 연세대 학생회관 1층엔 '연세네컷'으로 불리는 무인사진관이 올해 초 들어섰다. 이 자리엔 복사실이 위치해있었다. 이찬규 기자

서울 신촌동 연세대 학생회관 1층엔 '연세네컷'으로 불리는 무인사진관이 올해 초 들어섰다. 이 자리엔 복사실이 위치해있었다. 이찬규 기자

 서점과 문구점이 떠난 대학교 내 빈 공간에는 속속 다채로운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2000년대 초입까지만 해도 까페나 패스트푸드 판매점 정도였지만 이제는 코인노래방, 스티커 사진 키오스크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과거에는 면학 분위기 조성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입주를 거절하던 업소들이 많이 생겼다”며 “트렌드와 학생 수요에 맞게 입주 가게를 받자는 게 요즘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서울 신촌동 연세대 학생회관 1층에는 ‘연세네컷’으로 불리는 무인사진관이 들어섰다. 지난해까지 복사실이 있던 자리다. 핑크, 그레이, 퍼플 등 배경색 사진 2장에 4000원. 꾸밀 수 있는 머리띠 같은 소품과 머리를 정돈할 고데기도 구비돼 있다. 연세대학생 김모(21)씨는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을 때 스트레스 풀거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연세네컷을 자주 찾았다”며 “대동제 때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어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부터 서울대는 학생회관에 무인 간편식(밀키트) 판매 코너를 운영했다. 뉴스1

지난해 9월부터 서울대는 학생회관에 무인 간편식(밀키트) 판매 코너를 운영했다. 뉴스1

 서울대는 지난해 학생식당 공간 한쪽에 무인 간편식(밀키드) 판매‧조리 공간을 마련했다. 고물가와 학생들의 식생활 문화가 바뀐 탓이다. 2018년부턴 기숙사 내부에 코인노래방을 운영 중이다. 부산 동명대도 같은 이유로 지난해 코인노래방과 보드게임 전용 공간을 꾸렸다. 카이스트는 교직원‧학생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2017년 스크린야구장을 만들었다.

캠퍼스 내 편의점과 카페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무인 또는 로봇 운영으로 바뀌고 있다. 인건비 부담 증가에 대한 업주들의 대응이다. 연세대 공학관에 있는 무인편의점에선 셀프계산대 앞에 줄을 선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인쇄·복사실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무인운영으로 바뀌는 추세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중앙대 중앙도서관 등 대학 내 곳곳에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 내부 시설의 임대료가 바깥보단 싸다는 게 입점 가게 상인들에게 그나마 위안이었는데 그럼에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상인들이 많은 것 같다”며 “기존 가게가 폐업하고 새로운 유형의 가게가 들어서는 흐름을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새로운 유형의 편의시설이 반짝하다 곧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중앙대는 서점과 문구점이 사라진 장소에 들어올 업체를 아직 찾지 못했고 편의시설이 모여있는 이화여대 ECC에도 공실을 많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학생 수 자체도 줄고 있어 카페나 식당,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다 사라질 수도 있다”며 “학생 불편도 커지겠지만 학교에도 재정적 손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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