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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국화어(菊花魚), 국화꽃이 된 생선요리

중앙일보

입력

중국의 생선 요리 '국화어'. 사진 샤추팡

중국의 생선 요리 '국화어'. 사진 샤추팡

중국에는 음식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접시에 담아 내오는 요리가 꽤 있다. 삶은 계란으로 병아리를 조각해 장식하기도 하고 소스로 꽃과 나무를 그려 놓기도 하며 크림으로 눈 덮인 설산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혹은 닭이나 오리, 비둘기 머리를 살려 날아가는 봉황을 나타낸 요리도 있다. 어떤 것은 모양이 너무 예뻐 한편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래와 의미를 알고 먹으면 단순한 눈 호강을 넘어 재미와 맛의 깊이가 더해지기도 한다.

이런 음식 중에 국화어(菊花魚) 혹은 국화재어(菊花財魚)라는 요리가 있다. 덧붙이자면 생선 종류에 따라 앞의 국화는 수식어로 고정된 채 생선별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국화어 요리, 여러 면에서 특이한데 특히 요리 모양새가 독특하다. 요리할 생선을 껍질째 포를 뜨듯 자른 후 한쪽 부분만 가늘게 채썰듯 썬다. 그리고 기름에 넣어 튀기는데 생선 살과 껍질이 부위에 따라 다르게 수축되면서 활짝 핀 국화꽃 같은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소스를 부으면 노란색 황국(黃菊) 내지는 주황색 국화꽃이 활짝 핀 것 같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음식을 먹기 전에 식탁에 놓인 국화꽃 모양의 생선요리를 바라보며 옛 문인들이 느꼈을 국화 감상(賞菊)의 정취를 국화어 요리를 통해 맛보라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국화꽃이라는 미적 표현을 통해 미각을 자극하는 요리 예술의 일종인 것 같지만 국화어에 담긴 의미는 그 이상인 듯싶다. 숨겨진 뜻을 알아야만 맛볼 수 있는 정취다.

먼저 중국에서는 국화어라는 요리가 기원전 3~4세기 무렵의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이며 충신이었던 굴원을 기념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국화어를 만들 때 쓰는 하얀 생선살과 국화꽃 모양에서 풍길 것 같은 향기가 모시던 임금을 지키지 못하고 나라가 망하자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 순백의 지조와 절개, 그리고 고결한 인품의 향기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국화어라는 요리, 누가 언제 어디서 만들었는지 분명치도 않고 국화꽃 모양의 생선요리에 뜬금없이 굴원을 왜 연관 짓는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속설은 그렇다.

중국에서는 단오절이나, 그 무렵의 대입 시험에서 나뭇잎으로 싼 찹쌀떡인 쫑즈(粽子)를 먹으며 굴원에게 액땜과 소원을 비는데 명확하지는 않지만 국화어 요리에도 뭔가 그런 바램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단 중국 속설에 국화어, 특히 국화재어를 먹으면 양기를 보완해 힘이 솟는다고도 하고 또는 복이 들어와 부유해진다고도 말한다. 요리 재료인 생선 이름과 관련해서 생긴 믿음인 것 같은데 물고기 어(魚)자와 넉넉할 유(裕)가 중국어로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생선요리를 먹으면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국화어 요리도 여기에 해당된다.

국화어 요리에는 재어(財魚)라는 민물 생선이 많이 쓰인다고 하는데 이 생선으로 만든 요리가 국화재어(菊花財魚)다. 중국에서는 특히 재어로 만든 국화어 요리를 먹으면 부자가 된다며 더더욱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물고기 이름에 재물 재(財)자가 들어가니 재물이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재어의 또 다른 이름은 풍어(鳢魚)다. 생선 이름에 풍년 풍(豊)자가 들어가니 역시 먹으면 풍요로워진다는 풀이다.

재어 혹은 풍어라는 이름의 민물 생선, 엄청난 물고기인 것 같지만 실은 가물치다. 한국에서는 환자들의 원기회복이나 여성의 산후조리 등으로 많이 찾는 생선이다. 힘이 펄펄 넘치는 생선인데다 이름에까지 재물이라는 글자가 들어갔으니 중국인들, 국화재어라는 생선요리를 각별하게 여길 만 하다.

재료로 쓰이는 생선도 중요하지만 국화어 요리의 핵심은 어쨌든 생선 살로 국화꽃을 형상화했다는 데 있다. 왜 하필 국화꽃일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요리에 한껏 모양새를 낸 것일 수도 있지만 동양에서 국화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옛날 사람들, 국화꽃을 먹으면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전설도 있다. 중국 남양이라는 곳에 감곡수(甘谷水)라는 약수가 있었다. 가을이면 주변에 국화꽃이 만발해 꽃잎이 물 위에 떨어졌다. 국화꽃 떨어진 약수의 물맛이 국화차를 마시는 것처럼 감미로웠기에 그곳 사람들은 따로 우물을 파지 않고 꽃물을 그대로 마셨다. 그 때문인지 마을 사람 중에는 오래 살지 않는 이가 없어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은 150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예전에는 가을이 깊어지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이면 장수를 기원하며 국화꽃으로 술과 차를 마시고 국화전을 부쳐 먹었다. 생선 살로 국화꽃을 만든 국화어 요리도 같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굴원도 국화 관련 시를 남겼다.  “아침에는 모란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떨어지는 가을 국화 꽃잎을 먹는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굴원이 비록 장수는 못했지만 중국인 마음속에는 신으로 남았으니 국화의 전설, 틀린 것만은 아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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