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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스타 이효리의 변신…'후디에 반바지'에 팬들 당황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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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영화 ‘똥개’(2003)는 배우 정우성의 변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데뷔작 ‘비트’와 ‘태양은 없다’ 등에서 아름다운 용모로 세상을 놀라게 한 그는 여기서 지저분한 얼굴의 동네 청년으로 변했다.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미남 정우성을 연기자 정우성으로 보게 한 영화”라는 게 관객의 중론이었다. 그의 파격은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팬으로서 마음 한구석에는 영화가 그의 잘생긴 얼굴을 1초도 보여주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미남’으로만 소비되고 싶지 않은 배우가 보여주고 싶은 점을 알면서도, 팬으로서도 스타에게 꼭 보고 싶은 모습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6년 만의 신곡으로 ‘가수’ 확인
화려한 댄스보다 ‘성숙’에 무게
그래도 예전 카리스마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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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개봉을 앞둔 영화 ‘서울의 봄’ 예고 포스터에서 군인이 된 정우성은 50대에도 여전히 얼굴만으로 시선을 끈다. 팬들은 그가 아주 늙어버리기 전까지는 자신의 미모를 ‘남용’해도 기꺼이 용서할 듯하다.

이효리가 최근 6년 만에 낸 디지털 싱글 ‘후디에 반바지’에서는 자신이 지금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깊이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20대 내내 당대의 트렌드를 이끈 수퍼스타답게 힙합을 베이스로 한 로파이(Lo-Fi) 이지리스닝으로 최근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30대 정신적 성숙기를 거친 40대의 그답게 화려함과 강렬함으로 애써 승부하기 보다는 느슨한 패션과 리듬으로 여유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타인의 장단에 맞추지 않고 내가 무얼 걸치든, 어디에 서 있든, 난 더 우아하게 나만의 레드카펫을 걷는다’라는 젊은 시절 당당한 메시지는 그대로 내세웠다. 노래는 편안하고 쉽게 들려 전체적으로 나쁘지는 않다. 어쨌든 이름만으로 거대한 브랜드인 그가 ‘가수’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신곡으로 도전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이효리의 팬들이 그에게 보고 싶어 하는 지점과의 차이다. 이번 노래를 놓고 “내가 이효리에게 바란 건 그게 아닌데” 같은 아쉬운 반응이 눈에 많이 띈다. 20여 년 전 데뷔 때부터의 영상들에 언제나 “2023년 지금 이대로 나와도 인기를 휩쓸 거다”라는 확신의 댓글로 도배했던 팬들이었다.

이효리는 “K팝이란 용어가 있기도 전에 이렇게 힙한 패션을 선도한 자가 있었다”고 자랑하고픈 수퍼스타였다. 등장만 해도 무대가 환해지고 화려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하는 순간을 기억하던 이들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후디와 반바지 차림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변신하려는 노력은 스타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다. 언제까지 과거의 이미지만 재탕하며 머물러 있을 순 없다. 그는 정재형과의 유튜브 영상에서 “트렌드에 뒤처져 있지 않으면서, 내가 가진 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고” 그러면서도 “뭔가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싶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그렇지만 이번 싱글을 보면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수퍼스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에 눌려 있어 보인다. 성숙함을 드러내려 화려한 리듬과 댄스의 힘을 빼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며 낯선 패션을 보이고, ‘나다운 것’을 벗어날 필요가 없다는 듯 아주 좁은 음역대로만 노래한다. 너무 많은 생각을 담으려다 딱히 새롭지도 딱히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 어정쩡한 결과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팬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이효리만의 독보적인 멋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지금 이효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내 나이에 새로운 뭔가를 보여줄 수 있을까”보다는 “내가 정말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고민하는 일인 것 같다. 성시경이 발라드가 한물간 이 시대에도 “이게 너무 좋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라서” 다시 발라드곡을 들고나와 환영받는 최근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거기서 출발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그게 진짜 그에게 바라는 변신이다.

성장이라니, 데뷔 26년차 40대의 수퍼스타에게?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건 완성되지 않은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다.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음을 알고 그것을 개발하는 것이다. 얼마 전 그는 보컬학원에 등록해 발성부터 배우고 있다고 밝혔는데, 그런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이효리답다.

나이가 들었으니 이건 자제해야 하고, 트렌드를 따르기 위해 저건 해야 한다며 눈치 보는 건 팬들이 보고 싶은 모습이 아니다. 나이 따위, 수퍼스타로서의 부담 따위 벗어던지고 과감하고 발랄하게 자신의 한계를 넓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팬들은 새로운 트렌드에 환호하기도 하지만 스타가 환기해주는 추억에 열광하고 싶기도 하다. 변신이라는 개념에 얽매여 애써 이런 점을 외면할 필요도 없다.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점과 내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점을 맞추며 40대에 새 유행을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수퍼스타 이효리 정도라면 도전해볼 만한 과제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