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맨주먹 은가누"vs"금속배트 오타니"…기발한 일회용품 줄이기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4일 오후 1시, 서울 흑석동 중앙대 중앙도서관 쓰레기통 옆에 박스로 만든 투박한 분리수거함이 놓였다. 수거함에는 “이상형과 연애하고 올(All) F”, “이상형한테 차이고 올 A+” 중 하나를 컵홀더로 투표해달라는 문구가 적혔다. “맨주먹 은가누”와 “금속배트 오타니” 중 하나를 빨대로 고르라는 내용도 있었다. 재미있는 상황을 가정해 선택하는 ‘밸런스 게임’을 적용해 플라스틱컵과 빨대, 종이로 된 컵홀더를 분리배출하도록 유도한 프로젝트다.

환경 스타트업 '지구자판기'를 운영하고 있는 서사라(24)씨가 설치한 밸런스게임 분리수거함. 서씨 제공

환경 스타트업 '지구자판기'를 운영하고 있는 서사라(24)씨가 설치한 밸런스게임 분리수거함. 서씨 제공

지난 1일 도서관에서 쓰레기를 치우던 미화원 A씨는 “특히 시험 기간에 일회용컵이 많이 버려진다. 분리를 하지 않고 버리면 (미화원들이) 일일이 분리해야 하는데, 이 수거함 덕분에 훨씬 일이 줄었다”고 말했다.

분리수거함을 설치한 건 중앙대 학생들이 만든 환경 스타트업 ‘지구자판기’를 운영하고 있는 서사라(25)씨다. 서씨는 지난달 24일 새벽 도서관에서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중, 분리수거함 위에 어지럽게 놓인 일회용컵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밸런스 게임을 이용해 분리수거를 유도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서씨는 이날 오후 바로 학교에 버려진 박스를 찾아나섰다. 20여 분만에 탄생한 이 수거함에는 하루에만 컵홀더와 빨대가 100개 가량 모인다. 학교 밖에서도 관심을 가진 덕에 서씨는 사회적경제연구원과 함께 실제로 밸런스게임 쓰레기통을 만드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환경 관련 스타트업 '지구자판기'를 운영하고 있는 서사라(24)씨는 분리수거함 위에 어지럽게 놓인 일회용컵을 보고 밸런스게임 수거함을 생각해냈다. 서씨 제공

환경 관련 스타트업 '지구자판기'를 운영하고 있는 서사라(24)씨는 분리수거함 위에 어지럽게 놓인 일회용컵을 보고 밸런스게임 수거함을 생각해냈다. 서씨 제공

서씨는 “공격적인 환경 보호 메시지를 내기보다 재미를 앞세워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했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며 “실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환경 관련 프로젝트도 많은데, 달라진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선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대 디자인과 학생들이 주축이 된 ‘보틀그라운드’ 캠페인은 400개의 다회용컵을 교내 생활협동조합에서 음료 주문시 무료로 나눠준 뒤, 이를 교내 곳곳에 비치된 수거함을 통해 반납받는 형태로 진행된다. 모인 컵들은 학생들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수거해 세척한 뒤 이튿날 카페에 재분배한다.

서울대 디자인과 학생들과 '보틀 팩토리'에서 서울대 캠퍼스 9곳에 설치해놓은 다회용컵 반납함. 김민정 기자

서울대 디자인과 학생들과 '보틀 팩토리'에서 서울대 캠퍼스 9곳에 설치해놓은 다회용컵 반납함. 김민정 기자

총 400개 컵을 가지고 시작한 프로젝트는 첫날인 23일에는 24개의 컵만이 회수됐지만, 입소문을 탄 이후 회수율은 점점 늘어 지난 1일에는 136개 컵이 반납됐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인과 학생 이규원(24)씨는 “반납함 위치도 음료를 들고 산책하기 좋은 동선을 고려해 선정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디자인과 석사과정생 이주현(25)씨는 “프로젝트를 마친 후엔 경제성 분석, 구성원 반응 등을 종합해 학교 본부에도 다회용컵 순환 시스템을 제안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