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또 소리소문 없이 갔다" 서울 한복판 이 동네 '100년 아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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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익.’ 지난 1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의 한 비탈길에 위치한 청석슈퍼. 오래된 철제문 특유의 쇳소리가 3평 남짓한 슈퍼 안의 정적을 깼다. 동네 친구와 함께 오래된 TV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주인 이내진(76)씨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미 몇년 전 단종된 껌 상자가 놓여진 매대 옆의 철문으로 동사무소 직원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한쪽 어깨엔 10㎏ 쌀포대를 짊어지고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지급되는 쌀이었다. “어르신, 이 쌀 좀 맡아 주세요.” 동사무소 직원의 말에 이씨는 “누가 또 이사갔어요? 소리소문없이 갔네. 간다는 말도 없었는데…”라고 답했다. 직원은 “그 오빠 돌보는 분 있잖아요. 아랫집 아주머니요. 어제 이사갔다고 쌀 좀 맡아달래요”라고 했다.

1일 오전 청석슈퍼에서 만난 슈퍼 주인 이내진씨와 친구 이추자(77·좌)씨. 매일 슈퍼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이사가면 한달에 한 번정도밖에 못 볼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이영근 기자

1일 오전 청석슈퍼에서 만난 슈퍼 주인 이내진씨와 친구 이추자(77·좌)씨. 매일 슈퍼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이사가면 한달에 한 번정도밖에 못 볼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이영근 기자

이씨 역시 곧 동네를 떠나야 한다. 서울 마포구를 떠나 이곳에 자리 잡은지 62년만, 3평 슈퍼에서 매일을 보낸지 45년만이다. 그는 여기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을 떠나 보냈다. 그리고 이젠 이 모든 기억과 3평짜리 가게, 오래된 철문과 TV, 몇년째 줄어 들지 않는 껌통, 평생을 함께 한 이웃 등 익숙한 모든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한남3구역(보광동ㆍ한남동) 재개발을 위한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는 30일 “이날부터 한남3구역 정비사업 시행을 위한 이주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2003년 11월 한남3구역을 뉴타운으로 지정한 지 20년 만이다. 이주 대상은 8300가구에 달한다. 이들 모두 길어도 2년 안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씨 슈퍼와 집, 이웃 친구들의 집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 이씨는 “매일 보던 친구와 헤어져서 아쉬운데 그래도 어쩌겠어요. 왔으면 또 가는게 인생이지”라고 말했다.

굴곡진 역사 품은 한남제3구역, 8300가구 이주 개시

한남3구역은 서울 한복판에 섬처럼 머물러 있었다. 한강 양쪽을 고층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는 서울에서, 키작은 주택과 교회가 올망졸망 모여 있는 동네의 모습은 생경한 풍경을 연출했다. 동네의 역사 역시 이런 풍경만큼이나 독특하고, 굴곡지다.

낡은 주택이 몰려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이 지난 30일 대규모 이주를 개시했다. 재개발을 통해 대단지 아파트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사진 연합뉴스

낡은 주택이 몰려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이 지난 30일 대규모 이주를 개시했다. 재개발을 통해 대단지 아파트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사진 연합뉴스

1904년, 한일의정서를 체결한 일본은 용산ㆍ평양ㆍ의주 등 세 곳에 군사기지를 조성하고 조선인을 강제 이주시켰다. 이 중 용산기지가 보광동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뒤엔 한국전쟁의 상흔이 깊게 남았다. 보광동 ‘토박이’ 조점순(88)씨는 하마터면 이산가족이 될 뻔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회상했다. “1950년 6월 28일에 한강 다리가 끊겼거든. 한남동 나루터에서 수원까지 걸어갔다가 간신히 피난 가는 기차 지붕에 올라탔어. 기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구걸하면서 한 달 만에 대전까지 갔는데 거기서 떡을 팔던 엄마랑 겨우 상봉했지. 보광동으로 다시 오니 우리 집도 폭격 맞아서 없더라고.” 조씨의 말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군 기지가 자리 잡았다. 농촌 이주민, 피난민 등이 몰려들었다. 조씨는 “여기 보광동에 성냥공장, 요꼬라고 스웨터 가내수공업 공장이 생겼거든. 동네가 번듯해지니까 1960~70년대에 시골에서 사람들이 많이 이사왔어”라고 말했다. 미군 기지 주변으로는 ‘기지촌 여성’, ‘양공주’ 등의 멸칭으로 불렸던 여성들이 대거 모여 살았다. 조씨는 “양공주들도 참 많았어. 결혼해서 남편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서 집안 일으킨 애들도 있었지. 참 대단한 애들이야”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용산구 보광동의 한 양로원에서 만난 보광동 '토박이' 조점순(88)씨가 한국전쟁 경험을 증언하고 있다. 조씨는 "보광동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다 죽고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영근 기자

지난달 31일 용산구 보광동의 한 양로원에서 만난 보광동 '토박이' 조점순(88)씨가 한국전쟁 경험을 증언하고 있다. 조씨는 "보광동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다 죽고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영근 기자

마땅히 살곳이 없던 상이용사를 위한 주택단지가 이곳에 조성되기도 했다. “서울 보광동에서 8900만환(圜) 예산으로 된 230동의 (상이용사 주택) 기공식이 있었다” 1955년 4월 12일자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지금은 빈집이 된 상이용사 주택들은 지금도 동네 곳곳에 남아 있다.

지난달 31일 보광동 주민이던 김여정 작가가 한국전쟁 당시 다친 상이용사를 위해 지어진 주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영근 기자

지난달 31일 보광동 주민이던 김여정 작가가 한국전쟁 당시 다친 상이용사를 위해 지어진 주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영근 기자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외국인 이주민들이 대거 자리 잡았다. 1994년 산업연수생제가 도입된 뒤 중동·남아프리카계 등 대륙, 국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외국인들이 이곳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월세가 저렴한데다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도 가까이 있어 금세 공동체가 형성됐다. 지난달 31일에도 용산 보광초등학교 인근 골목길에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고 있었다. 그중엔 지난 2012년 탈레반 박해를 피해 한국 땅을 밟은 아프가니스탄 국적 부부의 아들 압둘 무사위(9)도 있었다. 낯선 땅에 정착한 무사위의 가족들이 기댄 공간은 ‘바라카 작은 도서관’이다. 파키스탄ㆍ아프가니스탄ㆍ미얀마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민 2세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또래들과 방과 후 시간을 보내고, 한국어ㆍ영어ㆍ수학 등도 배운다.

보광동 ‘토박이’이도, 이주민 2세도 “고향 떠나려니 막막”

이처럼 켜켜이 역사와 추억이 쌓인 곳이지만, 바라카 작은 도서관도 이씨의 슈퍼도 조씨가 태어난 집도 이주를 피할 수 없다.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된 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조씨는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살겠나. 원룸이라도 여기서 살고 싶다”고 말했고, 보광동에서 나고 자란 무사위(9)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요. 슬퍼서 일부러 친구들끼리는 이사 얘기를 잘 안 꺼내요”라고 말했다. 무사위의 누나 압둘 아스마(22) 역시 “월세가 저렴한 경기, 인천 등으로 이사가야할 것 같은데, 보광동만큼 우리를 환대하는 공간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보광초등학교 인근 편의점에서 아프가니스탄 국적의 무사위(9)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 탈레반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무사위 가족은 이주를 앞두고 있다. 이영근 기자

지난달 31일 보광초등학교 인근 편의점에서 아프가니스탄 국적의 무사위(9)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 탈레반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무사위 가족은 이주를 앞두고 있다. 이영근 기자

다만, 이들의 추억을 남기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빛과 어둠을 두루 품은 지역인 만큼, “이곳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온전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4년 보광동에 카페를 차린 김여정(49) 작가가 대표적이다. 그는 보광동에 숨겨진 한국전쟁 참상과 어르신들의 삶을 보고, 듣고, 기록했다. 주민들을 인터뷰해 펴낸 「넓게 빛나는 마을, 보광동」(2019),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2022) 등이 그 결과물이다. 김씨는 “보광동에서는 어르신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 그해 여름을 기억하는 박물관이 하나 사라진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용산구 우사단로에 있는 이주민 공부방 '바라카 작은 도서관'에서 이선혜(42) 방과 후 학습지도 교사가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영근 기자

지난달 31일 용산구 우사단로에 있는 이주민 공부방 '바라카 작은 도서관'에서 이선혜(42) 방과 후 학습지도 교사가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영근 기자

한남3구역의 현재를 연극 형태로 기억하려는 이들도 있다. 공연팀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남선희ㆍ우주현ㆍ이수민ㆍ조현희)가 그들이다. 프로젝트를 이끄는 배우 남선희씨는 보광동 주민이다. 저렴한 월세를 찾아 2019년 이곳에 처음 흘러들었다고 한다. 공연은 한남3구역 주민을 무대에 직접 초대하거나 주민이 머무는 공간을 무대화하는 참여연극 형태로 진행된다. 2월부터 12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동네에서 선보이는 ‘월간 연극’이다. 지난 8월 공연에선 바라카 작은도서관 이주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이 상영됐다. 남씨는 “처음엔 ‘이 재밌는 동네를 왜 몰라주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연극을 하는 동안 이곳이 단순히 재밌는 지역이 아닌, 다양한 계층ㆍ인종ㆍ젠더를 모두 품은 참 드문 공간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가 기획한 월간 연극이 열렸다. 공연 장소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배우 남선희씨의 집이었다. 사진은 남씨가 보광동에 정착한 뒤 작성한 일기를 낭독하는 모습. 이영근 기자

지난달 30일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가 기획한 월간 연극이 열렸다. 공연 장소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배우 남선희씨의 집이었다. 사진은 남씨가 보광동에 정착한 뒤 작성한 일기를 낭독하는 모습. 이영근 기자

“랜드마크 조성”…5816가구 주거단지 들어서

향후 한남3구역에는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한남3구역 재개발 지구 면적은 38만6395㎡, 신축 연면적은 104만8998㎡에 달한다. 총 네 개 구역(2ㆍ3ㆍ4ㆍ5구역)에서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한남뉴타운에서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르다.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은 세계적인 건축기업 MVRDV와 손잡고 단지를 지역 랜드마크로 조성할 방침이다. 친환경 건축물 등에 강점이 있는 MVRDV는 한남동에서 한강을 연결하는 브리지데크, 전망대ㆍ공원, 나들목, 한강변 주거동 등의 설계를 맡는다.

재개발이 모두 완료되면 지하 6층~지상 22층인 주거건물 197개 동이 들어선다. 총 5816가구가 살 수 있다. 또한 도로와 공원, 공공기관 청사, 사회복지시설 학교 등의 공사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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