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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황원묵의 과학 산책

희망의 물거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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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황원묵 미국 텍사스A&M대 생명공학부 교수

황원묵 미국 텍사스A&M대 생명공학부 교수

열심히 노력했는데 원하는 성과를 못 이루었을 때 ‘모든 노력이 수포(水泡)로 돌아갔다’고 표현한다. 수포, 즉 물거품은 파도 끝이나 떨어지는 폭포, 세면대에 부딪히는 물줄기에서도 볼 수 있다. 격렬한 운동 끝에 만들어졌다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러나 조금만 더 살펴보면 물거품은 허무하기는커녕 많은 것을 의미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과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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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물결은 물 표면을 잔잔하게 만들려는 중력과 표면장력을 이기며 난류를 일으킨다. 울렁거리는 표면에서 공기 덩이를 떼어내 물방울을 만든다. 물속에 녹아있는 공기를 뱉어낼 수도 있다. 탄산음료나 맥주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병이나 캔을 열면 액체 속에 녹아있던 이산화탄소 분자들이 뭉치며 기포가 생긴다. 이것을 컵에 갑자기 따르면 격렬한 흐름까지 겹쳐 컵 밖까지 넘치는 두꺼운 거품이 나온다. 컵에 따른 후에는 작은 기포가 컵 안쪽 표면이나 음료 중간 일정 지점에서 한 줄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지점의 작은 흠이나 먼지들이 기포 형성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구름에서 응결된 빗방울은 중력 때문에 밑으로 떨어지지만, 물속에서 형성된 공기방울은 부력 때문에 올라간다.

탄산수는 매운맛을 느끼는 통각신경을 자극한다고 한다. 물거품은 시각과 미각뿐 아니라 청각도 자극한다. 풍선이 터지면 ‘펑’ 소리가 나지만, 작은 물방울은 터지면서 고주파 소리를 낸다. 물거품 속의 수많은 방울들은 ‘쏴아~’ 하며 경쾌한 합창을 한다.

노력의 결실을 당장 못 본 친구에게 “괜찮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야”라고 흔히 위로한다. 그런 위로 대신 “괜찮아, 네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잖아”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간의 노력을 잘 분석해보라는 뜻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인생의 끝없는 시도에 수반하는 크고 작은 실패는 물거품처럼 자연스럽다. 낙심할지 말지는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A&M대 생명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