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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술, 내가 녹음해도 ‘유죄’…국민 배심원들도 만장일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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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성형수술을 하러 들어가면서 녹음기를 숨겨 의료진의 대화를 녹음한 40대 남성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녹음파일을 유튜브에 공개한 변호사에게도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강두례)는 지난달 26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A(41)씨에게 징역 6개월 및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손모(39) 변호사에게는 징역 1년 실형 및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다만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2021년 6월, 코 성형수술을 받으러 간 A씨는 자신이 마취된 이후의 수술 상황을 알고 싶어서 USB 형태의 녹음기를 몸에 숨겨 수술방에 들어갔다. 녹음기에는 집도의였던 B씨와 간호사 C씨, 또 다른 성형외과 전문의 D씨의 목소리가 담겼다. A씨는 대리수술 의혹을 제기하며 사기죄 등으로 의료진을 고소했지만, 경찰에서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이 나자 손모 변호사를 찾아갔다. 손 변호사는 ‘성형외과와 싸우는 법’을 안내하는 변호사로 알려진 인물로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다.

손 변호사는 A씨의 녹음파일 중 일부를 포함해 ‘[음성녹음 증거 포함] 충격적인 #성형외과 #대리수술 #유령수술 수술실 현장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이 행위로 A씨와 손 변호사는 나란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A씨가 마취된 상태에서 녹음한 의료진의 대화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로,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였던 A씨가 녹음을 한 것이 불법이고, 이를 공개한 손 변호사도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들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녹음 당시 대리수술·성형 부작용 등을 염려할만한 정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CCTV 설치 의무화 법령 시행 이후에도, 동의를 받지 않은 녹음행위는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신청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A씨와 손 변호사 모두 유죄라고 평결했다. A씨에 대해선 집행유예 의견이 6명, 손 변호사에 대해선 실형 의견이 6명이었다.

재판부는 특히 손 변호사에 대해 “법률전문가인데도 불송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이나 의료분쟁조정, 소송 등 분쟁해결을 위해 마련된 적법절차를 전혀 시도해보지 않고 녹음을 공개했다”며 질타했다. A씨 측은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이 사건 피해자인 의료진은 A씨와 손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도 청구해, 오는 7일과 29일 변론기일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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