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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국민" 호칭부터 기싸움…'탈북어민 강제추방' 첫 재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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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어민을 강제로 북송한 혐의를 받는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부터),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관련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탈북어민을 강제로 북송한 혐의를 받는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부터),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가정보원법 위반 관련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부장 허경무·김정곤·김미경) 심리로 열린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 첫 공판이 사건 발생 4년만에 열렸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인사들과 이들을 기소한 검찰은 ‘탈북 어민들’에 대한 호칭부터 기싸움을 벌였다. 탈북 어민들을 두고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하다 무단으로 월선한 범죄인들”로 규정한 반면, 검찰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불렀다.

2019년 11월 2일, 북한에서 월남했다가 나포된 북한 어민 두 명은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는 닷새 뒤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들이 탈북 과정에서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했다는 점을 들어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로 보호 대상이 아니며,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흉악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정부 부처 협의 결과에 따라 추방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도 위법 논란이 격심했던 강제북송 사건은 정권이 바뀐 후 국가정보원의 고발과 검찰의 수사로 재판대 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한국서 단죄 어렵다” “상응 형벌 부과 가능”

정 전 실장은 검찰의 공소사실 낭독 후 직접 입장을 밝힐 기회를 얻어 “이번 사건을 탈북 어민 강제북송이라고 명명한 것 자체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 전 실장은 “이들은 동료 선원 16명을 도끼와 망치로 잔인하게 하룻밤에 살해한 흉악범”이라며 “당시 정부에서 이들을 진상조사했고 사법 절차에 따른 처벌이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탈북 어민들을 북한으로 돌려 보낸 데는 이유가 있다는 취지다.

정 전 실장과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변호를 맡은 김형연 변호사도 “(해당 어민은) 공공안전을 해칠 염려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으로서 입국불허가, 입국 금지 사유에 해당한다”며 “대한민국 국민에 편입할 경우, 남한 재판에서 단죄하기가 형식적으로 쉽지 않다는 이유도 컸다”고 했다. ‘시신 없는 살인’이고, 어민들이 피해자들의 혈흔을 제거하는 등 범죄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인멸됐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는 뜻이다.

반면 검찰은 모두진술에서 “북한 주민은 별도 절차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며 “(살인자라고 해도) 국내 수사 재판으로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할 수 있고, 이것이 헌법의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 온당한 처사”라고 했다. 모두 진술을 맡은 검사는 감정이 치민 듯 떨리는 목소리로 “(해당 어민이) 강제북송 이후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알려진 적이 없다. 살아있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며 “법치주의를 포기하고,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생명권과 기본권을 무시할 절박한 안보 위험이 있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귀순 진정성 두고도 충돌

통일부가 공개한 2019년 11월 북한어민 강제북송 당시 판문점 송환 사진. 사진 통일부

통일부가 공개한 2019년 11월 북한어민 강제북송 당시 판문점 송환 사진. 사진 통일부

이날 양측은 ‘북한 어민이 정말로 한국에 귀순하려 했냐’를 두고도 충돌했다. 김형연 변호사는 “(어민들은) 범행 후 자강도로 도주해 살려다 공범이 체포되자 NLL(북방한계선) 주변으로 도주했다. 이틀간 NLL을 오르내리며 해군과 대치했고, 해군 특수전 요원에게 제압되자 ‘웃으며 죽자’고 말한 점을 볼 때, 형식적으로 귀순의향서를 작성했으나, 실질적으로 형사 처분을 면하기 위한 선택에 불과해 인도적 가치가 낮다”고 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탈북 어민의 (귀순) 의사는 일관되고 진지다”며 이들이 나포 당시부터 조사 개시 이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귀순 의사를 밝혔다고 맞섰다. 검찰은 “(이들은) 해군의 요구에 따라 일시적으로 북상한 적이 있을 뿐이고, 어느 순간이라도 도주한 적 없이 경고사격이나 차단 기동을 뚫고 계속 남하했다”며 “증거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자술서와 보호신청서가 있고, 조사 시 수시로 (귀순 의사를) 확인했다는 게 검찰이 입증 가능한 내용”이라고 했다.

2019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되는 모습. 뉴스1

2019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되는 모습. 뉴스1

이날 재판 도중 발언 기회를 얻은 노 전 실장은 “새빨간 거짓말보다 거짓말이 더 위험하고, 거짓말보다 진실 내지 추측이 50 대 50 섞여 있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공소사실에 따르면) 언제 북송을 결정했다는 것인지, 언제 어떻게 무엇을 공모했다는 건지 공소장에 나와 있지 않아 변론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서 전 원장도 “북송 결정이 위법하다는 전제하에 이뤄진 이 사건 공소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사실관계가 틀린 것도 있고, 논리 비약도 있다. 이런 문제를 재판 과정에서 차차 밝혀나가기로 하겠다”고 했다. 양측의 입장차를 이날 확인한 재판부는 다음달 6일 2차 공판을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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