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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소연의 시인이 사랑한 단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모르겠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소연 시인

김소연 시인

누구보다 현실을 직시하며 시를 썼던 쉼보르스카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의 영감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잘 알고 있는 것들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서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눈길을 주지 않는 지식은 생명력이 없다고 말했다. 과학자 뉴턴과 퀴리도 “나는 모르겠어”는 인식을 출발로 하여 오랜 헤맴 끝에 인류에 기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시인의 삶도 그와 같은 궤도를 그린다고 말한다. “그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다”며 끝낸 이 수상 연설에서, 나는 쉼보르스카가 끝까지 들추어보며 갸웃했던 세계는 ‘당연한 세계’라고 생각한다. 아니,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사랑한 단어

시인이 사랑한 단어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확고함과, 당연할 리 없다고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사람의 흔들림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신이 이미 이해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자신감과 자신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세계를 이야기해보려는 작가의 불안감에 상상해본다. 시가 아직 우리에게 소중한 힘을 주고 있다면, 이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는 탓이 클 것이다. 흔들림과 불안감이라는 진자 운동은 일차적으로 생명을 지닌 존재들의 가장 큰 특징이며 인간을 한계 짓는 테두리를 한없이 건드리다 기어이 구멍을 내는 힘이 된다.

쉼보르스카는 ‘우리’라는 주어를 그 어떤 시인보다 즐겨 사용했다. 두 사람을 지칭하는 것에서부터 인류 전체를 지칭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우리’라는 말을 거듭 사용하며 우리를 우리답게 묶어주었다. 개별성을 묵살하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우리. 누군가를 배제하고야만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우리. 이 온전한 ‘우리’는 시인의 “나는 모르겠어”라는 말로부터 비롯되지 않았을까. 시인이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을 때, 그래서 주변의 공기를 흩뜨려놓을 때, 잘 알던 세계의 안온함에 균열이 갈 때, 그 틈새로 낯선 우리가 차곡차곡 도착해 왔으리라.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