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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드·벌청소 시킨 교사에 아동학대 혐의…헌재 판단은

중앙일보

입력

지난 26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 26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뉴스1]

칠판에 학생 이름을 붙이고 방과 후 청소를 시켰다는 교사에 대해, 검찰이 ‘정서적 학대’를 인정한 처분을 한 건 잘못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2021년 4월, 전라북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교사 B씨는 수업 중 아동 C가 페트병을 가지고 놀며 계속 소리를 내자 C의 이름표를 칠판에 붙였다. 이 반 칠판에는 호랑이가 양 손에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들고 있는 그림이 있었는데, 레드카드 옆에 이름이 붙으면 방과 후 교실 정리를 하는 게 B씨가 만든 학급 규칙이었다.

이 사건은 교사의 체벌 논란과 학부모의 교권침해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던 사건이다. 학부모 A씨는 다음날부터 아동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으며, 담임을 바꿔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학교 측은 A씨에게 교권침해 행위를 멈춰달라고 통지했는데, A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지난달 대법원 판결은 A씨의 행동이 교권침해 행위에 해당한단 판단을 내린 것이고,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교사 B씨의 행동을 아동학대로 본 검찰의 처분이 잘못됐단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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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B씨는 2021년 7월 학부모 A씨의 경찰 신고로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듬해 4월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기소유예 처분은 검사가 보기에 혐의는 인정되나 재판까지 갈 일은 아닐 때 내리는 불기소 처분의 일종이다. 전과기록에는 남지 않지만, 공직자 인사검증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수사경력에는 5년간 남는다. B씨는 헌법소원을 통해 기소유예 처분의 취소를 구했다.

지난 26일 헌법재판관 9명은 만장일치로 “전주지방검찰청이 교사 B씨에 대해 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날 헌재의 결정은 ‘벌 청소는 아동학대가 될 수 없다’거나 ‘교사가 레드카드 옆에 학생 이름 붙인 건 잘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헌재는 ▶교사 B씨가 아동C에게 교실 청소를 시킨 게 사실인지 ▶아동 C가 호소한 정신건강 문제가 레드카드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검찰이 수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고 처분을 내린 게 ‘자의적 검찰권 행사’란 판단만 한 것이다.

헌재는 문제의 그날, C가 벌 청소를 진짜 했는지 사실관계부터 의심스럽다고 했다. 대법원은 ‘교사 B가 당일 레드카드를 받은 아동 C와 D에게 방과 후 빗자루로 교실 바닥을 14분간 쓸게 했다’는 걸 사실로 봤지만, 정작 C는 ‘빗자루를 들고 있었을 뿐 청소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헌재는 그 날 같이 레드카드를 받았던 아동 D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그렇지 않으면 “교사 B씨가 C에게 하교하지 말고 남아서 청소하란 명시적 지시를 한 건지, 아니면 레드카드 제도에 대한 교사-학생 간 약속이 매우 확고해 레드카드를 주는 것이 청소하라는 묵시적 지시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아동 C는 사건 이후 야경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수사 당시 교사 B씨에 대해 ‘나쁜 선생님’ ‘감옥에 가야 할 나쁜 사람’이란 진술도 했다고 한다. 헌재는 “아동이 레드카드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게 된 것은, 교사 B씨가 폭언이나 차별을 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도, “(검찰의) 사건기록상 아동의 반응을 유발한 교사의 태도나 행위가 어떠하였는지는 드러나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또 “피해아동은 낙상사고, 같은 반 학생으로부터의 학교폭력 피해 등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사건도 경험하였는바, 아동의 결석이나 야경증 등이 레드카드로 인한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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