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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9월 결혼식장 예약, 지인 20명 동원해 겨우 성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달 1일 오전 8시58분. 세종시에 거주하는 예비신랑 정모(31)씨와 예비신부, 그리고 이들의 지인 20명은 휴대전화에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웨딩홀의 연락처를 입력해놓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시계가 8시59분을 가리키자 이들은 일제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 중이라는 연결음이 뜨면 전화를 끊고 다시 걸기를 수십번 반복하는 사이, 한 명이 전화 연결에 성공했다.

정씨가 목표로 한 결혼식 대관 날짜 선점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이 예식장은 이날 오전 9시부터 내년 9월 예약이 열렸는데 오직 전화로만 선착순 예약을 받는다. 정씨는 “수강신청 때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실패하면 어쩌나 긴장이 되더라”며 “ 미리 지인에게 성공 보수 10만원을 걸고 도움을 요청하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최근 예비부부 사이에선 정씨처럼 예식장 선점을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게 일상이 됐다. 예비부부가 많이 찾는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웨딩홀 선착순 예약 꿀팁’이라며 ‘취소 표가 나올 수 있으니 계속 새로고침을 눌러라’ ‘무조건 PC방에 가라’는 등의 조언을 담은 후기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이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예식장의 폐업 속도가 혼인건수 감소를 앞지르고 있는 데다가 그간 결혼식을 미뤄오던 예비부부가 앞다퉈 식장 예약에 달려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0일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1~7월 월평균 전국의 예식장 수는 743곳이다. 2019년만 해도 936곳으로 1000곳에 가까웠지만 팬데믹 이후 폐업하는 곳이 증가하면서 2020년 876곳→2021년 821곳→2022년 778곳→2023년 743곳까지 감소했다. 2019년보다 약 20.6% 감소한 것으로 매년 약 50여곳의 예식장이 없어진 셈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반면 올해 1~7월 월평균 혼인건수는 1만6551건이다. 2019년(1만9895건)보다 16.8% 줄었다. 혼인건수 감소보다 예식장 감소 속도가 더 빠르다 보니 예비부부가 식장 예약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특히 최근에는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한동안 줄었던 혼인건수가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7월 월평균 기준으로 볼 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1만6000건, 2022년 1만5436건까지 줄었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1115건 늘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웨딩플래너는 “최소 1년~1년 반 전에는 식장을 알아봐야 그나마 원하는 곳에서 식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예식장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의 경우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작년과 올해 7월 기준 전국 시도별 예식장 숫자와 지역별 혼인 건수를 단순 비교해본 결과 울산은 예식장 1곳당 혼인건수가 14.9→18.8건으로, 세종은 26.4→30건, 부산은 15.5→17.6건으로 증가했다. 이들이 실제 해당 지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가정한다면 예식장 선점 경쟁이 과거보다 더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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