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자릿수 목 날아간다" 비명의 비명…친명 자객출마 어떻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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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민주당이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단결하고 단합해야 한다.”

장기간의 단식을 마치고 지난 23일 당무에 복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복귀 일성은 ‘단결과 단합’이었다. 그는 지난 26일 전직 원내대표를 한 자리에 모아 오찬을 가지면서도 “분열은 필패고 단결은 필승이란 각오로 저부터 솔선수범하고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당내선 “구속 리스크를 털어낸 이 대표가 총선 승리를 위해 진심으로 통합에 나서려는 것 같다”(재선 의원)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이 대표의 진심은 복귀 후 첫 인사에서부터 의심받게 됐다. 비명계 송갑석 의원의 사퇴로 공석이었던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에 지난 27일 박정현 전 대전 대덕구청장을 임명하면서다. 박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의 일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를 바란다”(23일)고 했음에도, 그 다음날인 24일 친명 유튜브 ‘박시영TV’에 출연해 “그렇게 행동(가결)한 것에 대해서 용납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 ‘원외 친명계’ 인사다. 게다가 그는 비명계 박영순 의원 지역구인 대전 대덕에 총선 출사표를 던졌다.

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된 박정현 전 대전 대덕구청장이 2018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된 박정현 전 대전 대덕구청장이 2018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명계에선 “박 최고위원의 지명은 통합이 아니라 동지의 가슴에 비수를 들이대는 행위”(이원욱 의원) 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역시 비명계인 윤영찬 의원은 박 전 구청장 발탁 이전부터 “당내 현역 의원이 있는 곳에서 최고위원을 뽑는 것은 누가 봐도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고 당내 분란을 부추기는 것”(18일·SBS라디오)이라고 경계해왔다.

비명계 반발엔 이유가 있다. 총선이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최근, 원외 친명계 인사들의 비명계 현역 지역구 ‘자객 출마’가 당내의 화두이자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어서다. 당장 이원욱 의원 지역구인 경기 화성을엔 이 대표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복지재단 대표를 지냈던 진석범 동탄복지포럼 대표가 ‘자객’으로 활보하고 있다. 지난 8월 이 대표 특별보좌역에 임명된 그는 페이스북에서 “혁신, 혁신거리는 이원욱 의원님! 본선 아닌 경선에서 뵙고 싶습니다!”(13일)라는 등 이 의원을 수차례 저격했다. 지난 3일엔 단식 후 회복 치료 중인 이 대표를 찾아가 두 손 맞잡고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지난 28일 열린 진 대표 북콘서트엔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이 대표 축하기가 펄럭였다.

지난 15일 광주서 열린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사무총장의 불판기념회에에서 강 총장과 진석범 동탄복지포럼 대표가 기념사진을 촬영한 모습. 강 총장 옆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 명의 축하기가 세워져 있다. 진 대표 페이스북 캡처.

지난 15일 광주서 열린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사무총장의 불판기념회에에서 강 총장과 진석범 동탄복지포럼 대표가 기념사진을 촬영한 모습. 강 총장 옆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 명의 축하기가 세워져 있다. 진 대표 페이스북 캡처.

원외 친명계가 위협적인 데는 이들이 뭉쳐있는 까닭도 있다. 1000여명이 모였다는 ‘더민주전국혁신회의’가 대표적이다. 이 모임을 실질적으로 끌어가고 있는 강위원 사무총장은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때 경기도농수산진흥원 원장 등을 역임한 이 대표 측근이다. 강 총장도 지난 8월 이 대표 특별보좌역에 임명됐는데, 그 역시 비명계 송갑석 의원이 버티고 있는 광주 서갑에 출마한다. 지난 15일 광주서 열린 강 총장 출판기념회에 이 대표는 축전과 축하기를 보냈다. 박찬대·장경태 등 현직 친명계 최고위원도 축전을 보냈다. 강 총장은 “배지에 취해 정치타락의 길을 가지 않겠다. 이재명 정부 개막을 위해 운명을 걸겠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운영위원장인 김우영 강원도당위원장은 당초 본인 고향인 강원 강릉 출마를 준비하다 최근엔 비명계 강병원 의원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재선 은평구청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곤궁한 처지의 당대표를 겁박하여 알량한 기득권을 챙기려는 기회주의자들로 변신하는 걸 보며 (중략) 어찌 배신하는 자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있나”라며 “의리를 배신한 자를 심판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고향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는 게 아닌지 (중략) 달밝은 가을밤에 시름이 잠 못들게 한다”고 은평을 출마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고백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원외 친명계는 비명계 다선 의원들도 겨냥하고 있다.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과 이경 당 상근부대변인은 이 대표를 등에 업고 각각 5선의 설훈(경기 부천을) 의원과 이상민(대전 유성을)의원에 맞서려 한다.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도 4선의 김영주(서울 영등포갑) 의원에 도전장을 냈고, 이정헌 전 선대위 대변인과 양문석 전 방통위 상임위원도 각각 3선의 전혜숙(서울 광진갑)·전해철(경기 안산상록갑) 의원 지역구에 뛰어들었다. 그밖에도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경기 용인병·정춘숙), 황명선 전 민주당 대변인(충남 논산계룡금산·김종민), 정진욱 당대표 정무특보(광주 동남갑·윤영덕), 김성환 전 광주 동구청장(광주 동남을·이병훈) 등 원외 인사가 저마다 이 대표를 앞세워 비명계 현역 의원 지역구로 향했다.

최근엔 이들에 힘을 실어주는 여론조사도 발표됐다.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여론조사꽃이 지난 11~12일 윤영찬 의원 지역구인 경기 성남중원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는데, 친명계 원외 도전자인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14.6%)이 비명계 윤 의원(12.2%)보다 지지율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이에 “자객 출마가 공천으로 이어지면 물갈이 될 비명계가 10명은 넘을 것”(보좌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간 원외 도전자들에 대해 “누군지도 모르겠다”고 여유를 부렸던 비명계 의원들도 최근 “이 대표가 가결파 징계를 일단락했다지만, 추후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가동되면 비명계를 잘라낼 가능성도 있다”(수도권 중진)며 표정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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