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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대통령이 달라지면, 그게 혁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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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주필

최훈 주필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운전까지 해주었다. UAE·카타르까지 올 들어 107조원의 중동 투자 이끌어 냈다. 세일즈 나선 국가 CEO에의 예우로 밖의 윤석열 대통령은 늘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귀국 뒤 접한 지지율은 33%(한국갤럽 10월 24~26일, 부정평가 58%)였다. 보수의 아성이던 60대에서조차 긍정 48%·부정 47%(전주엔 46%·47%)의 반반이었다. 선거의 대주주인 수도권(서울 32% 대 59%, 인천경기 28% 대 63%)은 험악하다. 보수 텃밭이던 부산울산경남도 42% 대 47%. 미세 우위인 대구경북(49% 대 43%) 제외한 전 지역이 경고등이다. 보수 진영조차 대통령을 미더워해 하지 않는다. 정권의 위기이자 고비다.

고비맞은 민심의 대통령 지지 추이
불만 대부분이 ‘독단·일방적·불통’
큰 포용, 넓은 인사, 친절 설득으로
국민 모두의 ‘공화국 대통령’ 기대

애써 온 대통령이야 섭섭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잘못의 이유를 다시 수치가 일러준다. 경제·민생·물가(23%)라는 실물을 빼고는 독단적·일방적(9%), 외교(8%), 소통미흡(6%), 전반적으로 잘못(5%), 인사(4%), 통합협치 부족(4%) 등 모두 대통령 개인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다. “너무 거칠다”였다. 독선·불통·고집과 동의어다. 63세의 대통령이 그럼 어떻게 달라지란 얘기일까.

대통령이 더 커져야 한다. 27년 검사였던 대통령은 “새의 왼쪽 날개가 자꾸 뒤로 가려는데” 무슨 협치냐 했다. 싸우라고 한다. 대통령은 그러나 새의 오른쪽 날개가 아니다. 몸통의 방향과 좌우 날갯짓을 이끌 새의 머리다. 12명의 역대 대통령 모두 결말이 불행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란 자기 사명 망각해서였다. 5155만 모두의 대통령이 되라는 건 헌법의 명령이다. 모두를 조화롭게 아우르는 게 공화(共和) 아닌가.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의 지도자다. “어떤 이유든 특정한 계층·신분·세력을 차별·소외 말라” “공동체 구성원으로 모두를 인정·포용하라” “그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라”는 정신이다. 설득과 소통으로 갈등 풀어 통합과 상생공존 이루라는 건 그의 선택 아닌 의무다.

7월 초 38%의 우상향이던 대통령 지지가 하향한 결정타는 이후 “공산주의 추종, 반국가 세력”과의 전쟁 선언한 ‘적(敵) 만들기’였다. 하필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 “이념이 제일 중요하다”며 오른쪽으로만 가니 가운데 몰려 있던 중도층의 마음이 멀어져 버렸다. 공화국의 대통령에겐 모두가 집토끼다. 무슨 집토끼·산토끼가 따로 있는가. 보수 대통령은 농촌 대가족의 가장(家長) 같은 존재다. 농사 잘 지어 배부르고 등 따습게 가족을 위한다. 말 안 듣고 성치 않은 자식까지 모두 열 손가락이다. 씀씀이 아껴 후손들까지 배려하는 속 깊고 도량 넓은 큰 어른이다. 진즉 대통령이 야당에 먼저 손 내밀어 도와 달라 했다면…. 지금 심판의 칼날은 이재명 대표와 168석의 공룡 민주당을 겨누고 있을 터다.

인사가 넓어져야 한다. 총리·비서실장·여당대표 등 빅3는 물론 지휘부 대부분이 고시·관료·검사 출신이다. 아니면 캠프 출신, 대통령과 학연 등의 개인 친분이다. “고시와 비고시, 대통령의 단 하나 인재 기준”이란 얘기 나온 지 한참이다. 자기 임기 사고 안 나게 관리에 능한 관료들만 북적이니 도전적·창의적·장기적 그랜드 국가 비전은 하세월이다.

워낙 좁은 인력 풀의 돌려막기에 ‘MB 2기 정부’ 꼬리표 달린 것도 모자랐던가. 요즘엔 “간신들이 많은 것 같다”는 시중의 의구심마저 들린다. 자리·출세·연명·공천 등 결국은 자기 이익 목적인 논리를 그럴듯하게 뒤섞어 제언한다. 자꾸 적을 만들라 부추긴다. 대통령 빛날 때는 옆에 서 있다 화살 빗발치면 바람처럼 사라진다. “대통령께서 관련 수사를 많이 하셔서 그 분야엔 해박하신 전문가다.” 듣는 모두를 ‘바보’로 여긴 최악의 아부였다. 국정의 말썽마다 실명과 책임이 사라지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말했다”라는 커튼 뒤 변조음뿐이다. 유튜브엔 국회의 야당과 맞짱 뜨는 장관들의 전투 일색이다. ‘정의의 사도’인 양 자신은 멋져 보이겠지만 그 모든 부담 다 대통령의 몫으로 돌아온다. 선거의 심판대에 덩그러니 홀로 오를 이 누구겠는가. 퇴임 대비 총선에 대통령 사람 심기라…. 참으로 허망한 정치공학일 터다. 보라. 그 많던 친박·친이·친문들 다 어디 가 있는가. 대통령 스스로 민심을 얻으면 알아서 줄 잘 서는 게 국민의힘, 아니 정치의 오랜 습성일 뿐이다.

친절한 대통령이 보고프다. 국민과의 대화가 가물가물하다. 위임 CEO가 오너인 국민에게 하는 보고는 의무다. 정권의 치적일 일본과의 관계개선 역시 5700자 일방 담화로 끝내니 맥락 모를 국민들만 갑갑하다. 가장 잘하는 것? 가장 못하는 것? 그러니 다 외교다. 국민 70%가 불안하다는 일본 오염수, 개혁적 결단으로 상찬받았어야 할 긴축 건전 재정 역시 공화국 대통령의 육성 설명이 잘 안 들린다. 그러면 모든 게 ‘독선적’으로 뒤바뀌고 만다.

중동, 1%대 잠재성장률, 내년 트럼프 복귀 조짐까지…. 위기다. 극복할 대통령의 자본과 동력은 국민의 믿음뿐이다. 혁신위라…. 민심 되찾을 혁신은 단 하나. 대통령 스스로 달라지는 것이다.